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6/03)


    가롤로 르왕가 성인과 그의 동료 성인들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다. 우간다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에서 일하던 가롤로 르왕가는 가톨릭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고백하며 궁전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열성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면서 배교를 강요당하던 그와 동료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다가 1886년 6월에 살해되었다.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은 우간다 교회의 밑거름이 된 이들을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부르며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토빗은 아시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살았다. 유배지에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축제를 지키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데도 그는 이를 충실히 실천한다. 더 나아가 살해된 동족의 시신을 수습하는 용기마저 보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전하신다.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이 맡겨 놓은 포도밭을 차지할 욕심에 눈이 멀어 주인이 보낸 종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끝내는 주인의 아들마저도 살해해 버린다(복음).
    제1독서
    <토빗은 진리의 길을 걸어왔다.> ▥ 토빗기의 시작입니다. 1,3; 2,1ㄴ-8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우리의 축제인 오순절 곧 주간절에 나를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상이 놓이고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 그래서 토비야가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내가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 말하였다. “아버지, 누가 우리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살해하여 장터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 졸려 죽은 채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나는 잔치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벌떡 일어나 그 주검을 광장에서 날라다가, 해가 진 다음에 묻으려고 어떤 방에 놓아두었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고 슬픔에 싸인 채 음식을 먹었다.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 나는 울었다. 그리고 해가 진 다음에 나가서 땅을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제는 두렵지가 않은 모양이지? 전에도 저런 일 때문에 사형감으로 수배되어 달아난 적이 있는데, 또 저렇게 죽은 이들을 묻는구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환경 운동가로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엘 고어가 지구 온난화의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자 펴낸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요즈음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왜 이 말이 유행될까요? 진실이라는 것이 거짓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게 삶의 이치가 아닐는지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러한 ‘불편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포도밭 소출의 일부를 받아 오라고 종을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그러나 애당초 주인의 포도밭을 차지할 속셈이 있었던 소작인들에게 그 종들이 편하게 다가올 리 없었습니다. 눈엣가시와 같은 불편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종들을 매질하거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불편한 존재들을 아예 없애 버린 것입니다. 주인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야말로 소작인들에게 가장 불편한 존재입니다. 이제 아들만 없으면 포도밭을 차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들마저 죽여 버립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우리의 삶에서 제외시키지 맙시다. 그 일들을 치워 버리려고 하지 맙시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들과 그 일들을 통하여 우리를 바르게 이끌고자 하십니다.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일들은 ‘그릇된 나’를 고쳐 나가게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만바라볼지라-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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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6/03)


      가롤로 르왕가 성인과 그의 동료 성인들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다. 우간다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에서 일하던 가롤로 르왕가는 가톨릭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고백하며 궁전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열성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면서 배교를 강요당하던 그와 동료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다가 1886년 6월에 살해되었다.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은 우간다 교회의 밑거름이 된 이들을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부르며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토빗은 아시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살았다. 유배지에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축제를 지키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데도 그는 이를 충실히 실천한다. 더 나아가 살해된 동족의 시신을 수습하는 용기마저 보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전하신다.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이 맡겨 놓은 포도밭을 차지할 욕심에 눈이 멀어 주인이 보낸 종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끝내는 주인의 아들마저도 살해해 버린다(복음).
      제1독서
      <토빗은 진리의 길을 걸어왔다.> ▥ 토빗기의 시작입니다. 1,3; 2,1ㄴ-8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우리의 축제인 오순절 곧 주간절에 나를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상이 놓이고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 그래서 토비야가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내가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 말하였다. “아버지, 누가 우리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살해하여 장터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 졸려 죽은 채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나는 잔치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벌떡 일어나 그 주검을 광장에서 날라다가, 해가 진 다음에 묻으려고 어떤 방에 놓아두었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고 슬픔에 싸인 채 음식을 먹었다.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 나는 울었다. 그리고 해가 진 다음에 나가서 땅을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제는 두렵지가 않은 모양이지? 전에도 저런 일 때문에 사형감으로 수배되어 달아난 적이 있는데, 또 저렇게 죽은 이들을 묻는구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환경 운동가로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엘 고어가 지구 온난화의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자 펴낸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요즈음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왜 이 말이 유행될까요? 진실이라는 것이 거짓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게 삶의 이치가 아닐는지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러한 ‘불편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포도밭 소출의 일부를 받아 오라고 종을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그러나 애당초 주인의 포도밭을 차지할 속셈이 있었던 소작인들에게 그 종들이 편하게 다가올 리 없었습니다. 눈엣가시와 같은 불편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종들을 매질하거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불편한 존재들을 아예 없애 버린 것입니다. 주인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야말로 소작인들에게 가장 불편한 존재입니다. 이제 아들만 없으면 포도밭을 차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들마저 죽여 버립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우리의 삶에서 제외시키지 맙시다. 그 일들을 치워 버리려고 하지 맙시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들과 그 일들을 통하여 우리를 바르게 이끌고자 하십니다.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일들은 ‘그릇된 나’를 고쳐 나가게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만바라볼지라-더스토리
    
    
    
    

  2. guest 님의 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주님!
    오랜만에 복음묵상을 합니다
    하루에도 수 차례씩 복음말씀을 읽어 보지만
    묵상이 되지 않아 답답하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 드리면 성의가 없기 때문이지요
    복음묵상을 하면서 집중하지 않고 온갖 인터넷에
    있는 사건 들이나 연예기사까지 보고 복음말씀을 읽고~~
    기본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반성을 하면서도 ㅠㅠㅠ
    언제부터인지 복음묵상을 하면서 집중하지 못하고
    온갖 머릿 속에서 그날 그날 있었던 일들까지 생각하니
    복음묵상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전보다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과 함께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말씀에 저의 마음을 들킨 것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사랑이신 당신께서 용서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머릿 속에 세속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당신의 사랑으로
    변화되리라는 희망으로 복음묵상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보속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깊이 새겨봅니다
    아멘


    ♬ 주만바라볼지라-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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