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26)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는 다윗 가문의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성녀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뒤 하느님의 섭리로 마리아가 탄생하였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도 널리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였기에 더 이상 종의 신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종에서 자유로운 백성으로 신분이 바뀔 때에는 그에 맞는 삶의 방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따로 풀이해 주신다. 여기서 ‘씨’는 하늘 나라에 대한 복음 말씀이며, ‘열매’는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당신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사람에 따라 받아들여지거나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복음).
    제1독서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요한 1,17).>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0,1-17 그 무렵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씨를 뿌리십니다. 그분의 은총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좋은 땅인지 그렇지 않은 땅인지 하는 점입니다. 좋은 땅에는 열매가 맺히나, 좋지 않은 땅에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과 좋지 않은 땅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좋은 땅으로 일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돌을 치우고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돌과 잡초는 무엇입니까? 좋지 않은 습관과 그릇된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것을 없애는 과정에는 아픔이 따릅니다. 마치 얼굴이나 몸에 있는 잡티를 제거하려면 불편함과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둘째, 거름이나 영양분을 자주 뿌려 땅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보통 땅의 질을 높이는 거름과 영양분은 냄새가 그리 향긋하지 않습니다. 아니, 실은 고약합니다. 그렇게 역겨운 것들을 땅이 잘 흡수해야 토질이 좋아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들, 역겨운 것들, 불편한 것들을 잘 받아들일 때 우리 자신이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의 밭은 결코 건강할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고자 땅을 잘 일구고 있습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마음에도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26)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는 다윗 가문의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성녀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뒤 하느님의 섭리로 마리아가 탄생하였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도 널리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였기에 더 이상 종의 신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종에서 자유로운 백성으로 신분이 바뀔 때에는 그에 맞는 삶의 방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따로 풀이해 주신다. 여기서 ‘씨’는 하늘 나라에 대한 복음 말씀이며, ‘열매’는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당신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사람에 따라 받아들여지거나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복음).
      제1독서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요한 1,17).>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0,1-17 그 무렵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씨를 뿌리십니다. 그분의 은총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좋은 땅인지 그렇지 않은 땅인지 하는 점입니다. 좋은 땅에는 열매가 맺히나, 좋지 않은 땅에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과 좋지 않은 땅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좋은 땅으로 일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돌을 치우고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돌과 잡초는 무엇입니까? 좋지 않은 습관과 그릇된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것을 없애는 과정에는 아픔이 따릅니다. 마치 얼굴이나 몸에 있는 잡티를 제거하려면 불편함과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둘째, 거름이나 영양분을 자주 뿌려 땅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보통 땅의 질을 높이는 거름과 영양분은 냄새가 그리 향긋하지 않습니다. 아니, 실은 고약합니다. 그렇게 역겨운 것들을 땅이 잘 흡수해야 토질이 좋아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들, 역겨운 것들, 불편한 것들을 잘 받아들일 때 우리 자신이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의 밭은 결코 건강할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고자 땅을 잘 일구고 있습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마음에도
     
     
    
    
    

  2. guest 님의 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가시덤불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저를 봅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입으로는 아니!
    머릿 속에서는 계속 당신만을 믿어야 한다고
    그래야 살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머릿 속에서는……..
    하지만 모두가 머릿 속에서만 생각을 할 뿐
    저의 마음 속에는 끊임없이 세속의 거정과 재물에 대한 욕심과
    미련으로 당신의 뜻을 행하지 못하고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적어도 성당에서 미사나 기도를 드릴 때만이라도 잡념이 없어야 하는데
    기도를 하면서도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도 말씀의 전례는 고사하고
    성찬의 전례를 하면서도 머릿 속에는 세속의 일들로 저의 머릿 속이 가득차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는지……
    가식적인 저의 모습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저 같이 신앙따로 생활 따로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말하면서도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으며 고백성사 한번 진지하게 보지 못하는
    저의 신앙생활이 겉 치례에 불과함을 느낍니다
    그저 부득이한 경우에 주일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때는 신자라면 당연히 성사를 봐야 하는데……..
    성사를 보는 것이 무슨 큰 자랑거리가 되는 것처럼
    남들이 보기에는 고백소 앞에서 반성하는 것처럼 고개 숙이고 했지만
    정작 성사를 볼 때도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잘못을 정당화하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신부님께 고백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처럼
    당신의 말씀을 진심으로 듣고 깨달아 열배 삼십 배 아니 백배의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겟습니다
    당신의 자녀답게……..
    신앙인답게…..

    주님!
    저의 이 다짐이 변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요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속의 얷매여 세속의 온갖 유혹에 흔들리는 저를 붙잡아 주시고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아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