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감사’에 대한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감사할 일이 많음에도
불평을 늘어놓는 삶은 아니었는지 돌아봅시다.
아울러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풍요롭게 해 주시는
주님과 여러 은인을 기억하며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드립시다.
말씀의 초대
엘리사 시대에 시리아는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은 시리아 앞에서 보잘것없는 약소국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시리아의 장수인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의 도움으로 나병이 낫는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진정한 주님으로 섬기게 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의 복음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곧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처럼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낫게 하신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드린다. 다른 아홉 명은 건강을
되찾았음에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4-17
그 무렵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2,8-13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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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10/13)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감사’에 대한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감사할 일이 많음에도 불평을 늘어놓는 삶은 아니었는지 돌아봅시다. 아울러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풍요롭게 해 주시는 주님과 여러 은인을 기억하며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드립시다.
말씀의 초대
엘리사 시대에 시리아는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은 시리아 앞에서 보잘것없는 약소국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시리아의 장수인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의 도움으로 나병이 낫는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진정한 주님으로 섬기게 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의 복음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곧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처럼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낫게 하신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드린다. 다른 아홉 명은 건강을 되찾았음에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4-17 그 무렵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2,8-13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만이 구원의 은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상 안에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까? ‘감사’에 대한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만일 제가 이 본당에 오다가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동차가 완전히 부서져 폐차를 해야 하는데, 저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아마도 ‘정말 기적이네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정말 감사할 일이네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 올 때까지 다치지도 않았고, 제 자동차도 멀쩡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자동차 사고가 났지만 조금만 다친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아니면 자동차 사고도 나지 않고, 다치지도 않은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는 감사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공급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일분일초도 거르지 않고 이 산소를 거저 받아먹으며 숨을 쉽니다. 이 역시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럽 대륙을 정복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내가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고 한 반면, 극심한 신체장애자로 태어나 장애를 극복하며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던 미국의 헬렌 켈러는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에 더 가깝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 수도 없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