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대림 제2주간 화요일(12/10)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의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한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심판을 이제 거두시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되찾은 양의 비유’로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1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 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비유에 대하여 어느 교우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양이 길을 잃을 수 있을까요? 그냥 울타리 안에 조용히 머물면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설사 양을 한 마리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목자가 다른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둔 채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설까요?’ 이러한 의문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땅에서 양을 키우는 방식을 조금이라도 알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유다 지방의 목초지는 고원 지대에 좁고 길게 뻗쳐 있는데, 그 폭은 3-5킬로미터이며 울타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양들이 여기저기 다니며 풀을 뜯다가 벼랑 아래로 구르거나 갇히는 일이 잦았습니다. 당시에는 양 떼를 서너 명의 목자가 관리했기 때문에 이렇게 잃어버린 양을 목자 한 사람이 찾아 나서는 동안 다른 목자들이 나머지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길을 잃고 방황할 때 하느님께서 몸소 나서시어 우리를 살리고자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모습 자체가 바로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하늘 높은 곳에만 머무르시지 않고, 죽음의 골짜기로 치닫고 있는 우리를 구하시어 생명의 풀밭으로 인도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신다고 하여도, 우리 스스로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고 고집부리거나 그분 등에 업히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주님의 이끄심을 불필요하게 생각하거나 그분 품에 안기려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생명의 풀밭으로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목자의 노래 (Song of The Sheph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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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2주간 화요일(12/10)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의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한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심판을 이제 거두시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되찾은 양의 비유’로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1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 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비유에 대하여 어느 교우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양이 길을 잃을 수 있을까요? 그냥 울타리 안에 조용히 머물면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설사 양을 한 마리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목자가 다른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둔 채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설까요?’ 이러한 의문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땅에서 양을 키우는 방식을 조금이라도 알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유다 지방의 목초지는 고원 지대에 좁고 길게 뻗쳐 있는데, 그 폭은 3-5킬로미터이며 울타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양들이 여기저기 다니며 풀을 뜯다가 벼랑 아래로 구르거나 갇히는 일이 잦았습니다. 당시에는 양 떼를 서너 명의 목자가 관리했기 때문에 이렇게 잃어버린 양을 목자 한 사람이 찾아 나서는 동안 다른 목자들이 나머지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길을 잃고 방황할 때 하느님께서 몸소 나서시어 우리를 살리고자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모습 자체가 바로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하늘 높은 곳에만 머무르시지 않고, 죽음의 골짜기로 치닫고 있는 우리를 구하시어 생명의 풀밭으로 인도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신다고 하여도, 우리 스스로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고 고집부리거나 그분 등에 업히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주님의 이끄심을 불필요하게 생각하거나 그분 품에 안기려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생명의 풀밭으로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목자의 노래 (Song of The Shepherd)
     
     
    
    
    

  2. guest 님의 말: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주님!
    오랜만에 복음묵상을 하려 컴 앞에 앉아있습니다
    하지만 머리만 복잡하고….
    어떻게 묵상을 해야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묵상을 한 것도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로 복음묵상을
    소홀히 했던 요즈음 복음적인 삶을 살기 보다는 세속에 찌들은
    저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기쁨도 즐거움도 옛날 이야기처럼 들릴 뿐…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즈음입니다
    몇 년동안 하루에도 수 차례 이곳에 들어와서 눈도장을 찍고
    부족하나마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복음묵상을 했었는데 서너 달동안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리듬도 깨지고 신앙생활도 대충 눈만 뜨면 세속의 일로 바쁘고
    복음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하엿습니다
    복음묵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요
    사실 몇 년동안 복음묵상을 숙제한다고 생각하며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열심히 했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묵은 때를 볏겨버리듯이….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며 행복하게 지내려고 생각합니다
    나쁜 습관도 고치려고 노력하며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를 기쁘게 마무리하며 그렇게 살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새해에는 저에게도 당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말씀에 희망을 갖으며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에게도 축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묵상하며


    ♬ 길잃은양이 샘물찾듯~~~

  3. user#0 님의 말: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주님!
    오랜만에 복음묵상을 하려 컴 앞에 앉아있습니다
    하지만 머리만 복잡하고….
    어떻게 묵상을 해야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묵상을 한 것도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로 복음묵상을
    소홀히 했던 요즈음 복음적인 삶을 살기 보다는 세속에 찌들은
    저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기쁨도 즐거움도 옛날 이야기처럼 들릴 뿐…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즈음입니다
    몇 년동안 하루에도 수 차례 이곳에 들어와서 눈도장을 찍고
    부족하나마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복음묵상을 했었는데 서너 달동안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리듬도 깨지고 신앙생활도 대충 눈만 뜨면 세속의 일로 바쁘고
    복음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하엿습니다
    복음묵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요
    사실 몇 년동안 복음묵상을 숙제한다고 생각하며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열심히 했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묵은 때를 볏겨버리듯이….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며 행복하게 지내려고 생각합니다
    나쁜 습관도 고치려고 노력하며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를 기쁘게 마무리하며 그렇게 살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새해에는 저에게도 당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말씀에 희망을 갖으며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에게도 축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묵상하며


    ♬ 길잃은양이 샘물찾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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