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주님 공현 후 금요일(1/10)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는 세상을 이긴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하느님의 아드님에게 있다고 증언한다. 믿는 이는 이 증언을 마음에 간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주십사 간청하는 나병 환자를 치유해 주신다. 그리고 소문을 내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분에 관한 이야기는 점점 퍼져 나간다(복음).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16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병’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에서 매우 인상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병으로 여겨져 그 병을 앓고 있는 이는 참으로 비참한 처지의 삶을 이어 가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보여 주신 예수님의 깊은 연민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 대한 그분의 자비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병이 끔찍하다는 사실을 제가 처음 느낀 것은 아주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서 본 ‘벤허’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주인공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린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이 동굴에 숨어 살고 또 온몸이 종기투성이여서 사람들이 피하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하며 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한하운이라는 나환자 시인의 시를 배우며 그의 기구한 인생에 먹먹해지기도 했고, 고등학생 때에는 경남 산청에 있는 음성 나환자촌에서 봉사 활동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들을 보살폈던 오스트리아 수녀님들의 미담을 언론을 통해 보고 듣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유럽에 가서는 학생 때 전기를 읽었던 ‘나환자의 성자’ 다미안 신부님의 출신지인 루뱅이라는 벨기에의 작은 도시를 들러 그분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니, 저에게 나병 환자란 그저 간접적이고 피상적인 차원에서 애처롭게 여기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깊이 그들의 고통과 처절함에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당사자와 주님께서만 아시는 고통이 얼마나 많겠는지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피상적인 이해와 말로 그 아픔의 무게를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대하였는지 저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예수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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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주님 공현 후 금요일(1/10)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는 세상을 이긴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하느님의 아드님에게 있다고 증언한다. 믿는 이는 이 증언을 마음에 간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주십사 간청하는 나병 환자를 치유해 주신다. 그리고 소문을 내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분에 관한 이야기는 점점 퍼져 나간다(복음).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16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병’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에서 매우 인상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병으로 여겨져 그 병을 앓고 있는 이는 참으로 비참한 처지의 삶을 이어 가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보여 주신 예수님의 깊은 연민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 대한 그분의 자비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병이 끔찍하다는 사실을 제가 처음 느낀 것은 아주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서 본 ‘벤허’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주인공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린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이 동굴에 숨어 살고 또 온몸이 종기투성이여서 사람들이 피하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하며 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한하운이라는 나환자 시인의 시를 배우며 그의 기구한 인생에 먹먹해지기도 했고, 고등학생 때에는 경남 산청에 있는 음성 나환자촌에서 봉사 활동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들을 보살폈던 오스트리아 수녀님들의 미담을 언론을 통해 보고 듣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유럽에 가서는 학생 때 전기를 읽었던 ‘나환자의 성자’ 다미안 신부님의 출신지인 루뱅이라는 벨기에의 작은 도시를 들러 그분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니, 저에게 나병 환자란 그저 간접적이고 피상적인 차원에서 애처롭게 여기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깊이 그들의 고통과 처절함에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당사자와 주님께서만 아시는 고통이 얼마나 많겠는지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피상적인 이해와 말로 그 아픔의 무게를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대하였는지 저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예수님의 마음 
     
     
    
    
    

  2. guest 님의 말:

    “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말씀이 가슴이 뭉쿨합니다
    죄송하기도 하지요
    왜냐구요?
    저는 당신께 받은 것이 많은데...
    하혜와 같은 은혜를 입고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청원의 기도도차 “예”를 갖추기 보다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제가 하고 싶은대로 마치 부모 없는 고아처럼...
    행동을 하고 살았습니다
    제가 당신이 좋을 때는 사랑한다고 수선을 피웠고
    당신께 조금 서운하면 길길이 날뛰고 천방지축 버릇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우며..
    그렇게 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세속에서의 삶도 모두 다...
    마치 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제 마음대로...
    진심으로 당신께 제대로 된 기도한번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진심으로 당신께 감사의 기도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모든 기준을 제 마음대로 변덕스런 저의 마음이 여름 날씨처럼

    주님!
    저의 마음이 저의 생각이 이렇게 이기적입니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신앙인으로  당신의 자녀로 당당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계산만하는
    저의 이기적인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신앙인으로써 당신의 자녀답게 기본적인 기도부터
    진심으로 정성스럽게 당신께 저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저의 불안한 마음을 당신께 봉헌하며
    당신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도다. ”

    아멘


    ♬ 그는 나를 만졌네 / 윤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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