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3/20)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주님께 신뢰를 두는 이의 행복을 전한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에도 그 잎은 푸르고, 가문 해에도 열매를 맺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자신만 호의호식한 채 그 집 앞에서 비참하게 고생하던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다. 그 반면 죽은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서 위로를 받는다(복음).
    제1독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7,5-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으면,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인 \'데칼코마니\'가 생각납니다. 데칼코마니의 한편은 현세이고, 다른 한편은 죽은 뒤의 삶입니다. 현세에서 부자가 겪는 즐거움과 라자로의 비참함이 죽은 뒤의 삶에서는 서로 역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 한쪽을 보면 다른 한쪽을 그려 낼 수 있습니다. 죽은 뒤의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가련한 부자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라자로를 가르는 메울 수 없는 골짜기입니다. 반대편에 있는, 현재의 삶에서 죽은 다음에 만나게 될, 건널 수 없는 골짜기에 대응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수신자는 바로 부자입니다. 저승에 있는 골짜기는 부자가 살아 있는 동안 현세에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뜻이 이 비유에 담겨 있습니다. 그 골짜기는 다름 아니라 스스로를 다른 이의 고통에서 분리시켜 놓는 무관심하거나 무정한 마음을 통하여 서서히 생겨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리\'라는 포콜라레 성가가 생각났습니다. \"온 세상 곳곳에 수많은 강이 흐른다/ 길고 깊게 흐르는 강 우리를 가른다/ 서로 물 건너 마주 바라보지만 만나지 못한 채/ 그 눈빛은 불신으로 가득 차/ 어찌 강 위에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어찌 강 위에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지 않는가/ 어찌 다리를 놓지 않나.\"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은 자신을 쉽게 남들과 구별 짓고 그들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불행의 골짜기를 만드는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강을 이어 주는 다리를 놓아 서로 진솔하게 만나는 삶, 서로의 짐을 덜어 주며 돌보는 삶,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다리 / Gen성가, 노래 : 낙산중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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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간 목요일(3/20)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주님께 신뢰를 두는 이의 행복을 전한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에도 그 잎은 푸르고, 가문 해에도 열매를 맺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자신만 호의호식한 채 그 집 앞에서 비참하게 고생하던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다. 그 반면 죽은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서 위로를 받는다(복음).
      제1독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7,5-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으면,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인 '데칼코마니'가 생각납니다. 데칼코마니의 한편은 현세이고, 다른 한편은 죽은 뒤의 삶입니다. 현세에서 부자가 겪는 즐거움과 라자로의 비참함이 죽은 뒤의 삶에서는 서로 역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 한쪽을 보면 다른 한쪽을 그려 낼 수 있습니다. 죽은 뒤의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가련한 부자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라자로를 가르는 메울 수 없는 골짜기입니다. 반대편에 있는, 현재의 삶에서 죽은 다음에 만나게 될, 건널 수 없는 골짜기에 대응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수신자는 바로 부자입니다. 저승에 있는 골짜기는 부자가 살아 있는 동안 현세에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뜻이 이 비유에 담겨 있습니다. 그 골짜기는 다름 아니라 스스로를 다른 이의 고통에서 분리시켜 놓는 무관심하거나 무정한 마음을 통하여 서서히 생겨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리'라는 포콜라레 성가가 생각났습니다. "온 세상 곳곳에 수많은 강이 흐른다/ 길고 깊게 흐르는 강 우리를 가른다/ 서로 물 건너 마주 바라보지만 만나지 못한 채/ 그 눈빛은 불신으로 가득 차/ 어찌 강 위에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어찌 강 위에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지 않는가/ 어찌 다리를 놓지 않나."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은 자신을 쉽게 남들과 구별 짓고 그들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불행의 골짜기를 만드는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강을 이어 주는 다리를 놓아 서로 진솔하게 만나는 삶, 서로의 짐을 덜어 주며 돌보는 삶,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다리 / Gen성가, 노래 : 낙산중창단 
    
     
     
    
    
    

  2. guest 님의 말: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부자와 가난한 이의 비유를 말씀하신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으며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기쁘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지지고 볶으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저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하지만 마음 뿐...
    그동안의 저의 삶을 생각해보니
    저의 마음은 저의 바램은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욕심임을 깨닫습니다

    이유는요? 주님!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별로 베풀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세속의 욕심으로 남보다 더 잘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이웃의 고통과 형제들의 아품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고통만 크고 저의 아품만 크다고 생각했지요
    저의 마음이 그러니 베푼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 생각은 하고 있었지요
    제가  잘살게 된다면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베풀면서 살겠다고...
    제가 부자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만 인색하시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저에게만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참 어리석은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 
    아직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깊이 새기며
    후회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봅니다


    ♬ 다리 / Gen성가, 노래 : 낙산중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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