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부활 제7주간 월요일(6/02)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선교한다. 그곳의 제자들을 만난 바오로는 그들이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을 뿐 성령을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고,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한다. 그는 거기서 석 달 동안 머물며 회당에서 토론하고 담대히 가르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또한 당신께서 세상을 이겼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9,1-8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 들었듯이,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 있는 제자들과 만납니다.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해 듣고 받아들인 사람들이었지만, 아직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고 또한 성령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바오로는 이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고, 또한 성령도 받게 합니다. 바오로는 ‘담대히’ 회당에서 토론하고 설교합니다. 주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함께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에 머무르는 것은 성령의 작용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기쁘게 듣고, 복음에 따른 생활을 하며, 표징을 믿었던 에페소의 ‘제자들’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세례’(마르 10,38-40 참조)를 성령께서 주시는 ‘희망’ 안에서 받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의 우리 또한 잊지 않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수난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에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용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철학에서는 용기를 ‘덕’(德)이라고 말합니다. 덕으로서의 용기는 용맹한 기질만이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성숙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용기는 무모함이 아니라 위험이 따르는 지난날의 경험에 비추어 당황하지 않는 가운데 올바른 판단을 하고 과감히 실행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용기는 주님의 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입니다. 주님의 길은 우리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몸소 걸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불러일으키시는 희망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한 해의 전례주년에서 가장 열렬히 성령을 청하고 기다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이 이번 주일로 다가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삶에 불어넣어 주실 용기와 희망을 바라며 그분의 고난의 세례에도 기꺼이 함께할 다짐을 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Shout For Joy O Hea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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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7주간 월요일(6/02)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선교한다. 그곳의 제자들을 만난 바오로는 그들이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을 뿐 성령을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고,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한다. 그는 거기서 석 달 동안 머물며 회당에서 토론하고 담대히 가르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또한 당신께서 세상을 이겼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9,1-8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 들었듯이,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 있는 제자들과 만납니다.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해 듣고 받아들인 사람들이었지만, 아직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고 또한 성령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바오로는 이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고, 또한 성령도 받게 합니다. 바오로는 ‘담대히’ 회당에서 토론하고 설교합니다. 주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함께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에 머무르는 것은 성령의 작용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기쁘게 듣고, 복음에 따른 생활을 하며, 표징을 믿었던 에페소의 ‘제자들’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세례’(마르 10,38-40 참조)를 성령께서 주시는 ‘희망’ 안에서 받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의 우리 또한 잊지 않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수난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에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용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철학에서는 용기를 ‘덕’(德)이라고 말합니다. 덕으로서의 용기는 용맹한 기질만이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성숙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용기는 무모함이 아니라 위험이 따르는 지난날의 경험에 비추어 당황하지 않는 가운데 올바른 판단을 하고 과감히 실행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용기는 주님의 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입니다. 주님의 길은 우리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몸소 걸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불러일으키시는 희망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한 해의 전례주년에서 가장 열렬히 성령을 청하고 기다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이 이번 주일로 다가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삶에 불어넣어 주실 용기와 희망을 바라며 그분의 고난의 세례에도 기꺼이 함께할 다짐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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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주어도 
    먹여주고 입혀주고 영생까지 주시는데 당신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 멋대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저의 못난 모습이
    반성이 되엇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말씀만으로도 당신의 아픈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마음도 잠시...
    복음묵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판단하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당신을 원망하고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속물근성이 타고난 것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면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고...
    그러면서 입으로는 잘도 떠들어 대지요
    당신을 보지 않고서도 믿으니 저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구요
    참 잔머리의 대가 헬레나이지요? 주님!
    입으로는 저는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하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잘도 하지요

    주님!
    그래도 절망을 하지 않겟습니다
    당신께서 계시기에 용기를 갖으며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말씀을 굳게 믿으며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하신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얇은꾀를 부리는 신앙가 헬레나가 아닌 성실하게 당신의 자녀답게
    참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 싶습니다 간절히...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묵상하며


    ♬ Shout For Joy O Hea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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