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연중 제15주간 월요일(7/14)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백성의 거짓 경신례를 질타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번지르르한 제물이나 축제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우며,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은 이를 보살피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참된 경신례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집안 식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서로 갈라서고 원수가 될 날이 올 것이다(복음).
    제1독서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0-17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 작곡가이자 연주가로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년)라는 꽤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들이 주로 술집에서 연주하는 탱고 음악을 새롭게 하여 독창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곧,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하여 탱고가 오늘날처럼 매력적인 현대 음악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밤에는 찻집이나 술집에서 탱고를 연주하면서도 클래식 작곡가로 성공하려는 야심에 차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음악의 중심지 파리로 가 최고의 작곡가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작곡가는 피아졸라가 작곡한 현대적인 클래식 기법의 악보를 보고서 좋은 작품이긴 하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하였고, 이에 피아졸라는 크게 낙담했다고 합니다. 작곡가가 그를 위로하며 전에는 어떤 음악을 연주했는지를 묻자, 피아졸라는 마지못해 탱고였다고 답했습니다. 작곡가는 그에게 탱고 음악 하나를 피아노로 연주해 보라고 했고, 그는 망설이다가 연주했는데 반응이 이랬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마디에서 그녀는 연주를 멈추게 하고는 그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거야말로 피아졸라야! 절대로 그만두지 말게!’ 후일 그는 자신의 딸에게 그 순간이 마치 계시 같았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내가 나를 찾아내도록 도와주었다’”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에서). 피아졸라는 사람들의 통념에 타협하는 대신 자신의 고유하고 참된 길을 찾으라는 현명한 선생의 조언 덕분에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길도 이러한 진정한 예술가의 길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일깨워 주시듯, 세상 사람들이 평화라고 말하는 시대의 풍조와 통념에 신앙의 본분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타협의 길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이 들려오는 주님의 소리를 굳게 믿고 꿋꿋이 걸어야 합니다. 설령 비난받고 세상사를 모르는 바보라는 비웃음을 들을지라도 결국은 주님께서 선사하시는 인생의 참평화와 행복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와 함께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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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5주간 월요일(7/14)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백성의 거짓 경신례를 질타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번지르르한 제물이나 축제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우며,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은 이를 보살피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참된 경신례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집안 식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서로 갈라서고 원수가 될 날이 올 것이다(복음).
      제1독서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0-17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 작곡가이자 연주가로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년)라는 꽤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들이 주로 술집에서 연주하는 탱고 음악을 새롭게 하여 독창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곧,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하여 탱고가 오늘날처럼 매력적인 현대 음악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밤에는 찻집이나 술집에서 탱고를 연주하면서도 클래식 작곡가로 성공하려는 야심에 차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음악의 중심지 파리로 가 최고의 작곡가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작곡가는 피아졸라가 작곡한 현대적인 클래식 기법의 악보를 보고서 좋은 작품이긴 하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하였고, 이에 피아졸라는 크게 낙담했다고 합니다. 작곡가가 그를 위로하며 전에는 어떤 음악을 연주했는지를 묻자, 피아졸라는 마지못해 탱고였다고 답했습니다. 작곡가는 그에게 탱고 음악 하나를 피아노로 연주해 보라고 했고, 그는 망설이다가 연주했는데 반응이 이랬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마디에서 그녀는 연주를 멈추게 하고는 그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거야말로 피아졸라야! 절대로 그만두지 말게!’ 후일 그는 자신의 딸에게 그 순간이 마치 계시 같았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내가 나를 찾아내도록 도와주었다’”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에서). 피아졸라는 사람들의 통념에 타협하는 대신 자신의 고유하고 참된 길을 찾으라는 현명한 선생의 조언 덕분에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길도 이러한 진정한 예술가의 길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일깨워 주시듯, 세상 사람들이 평화라고 말하는 시대의 풍조와 통념에 신앙의 본분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타협의 길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이 들려오는 주님의 소리를 굳게 믿고 꿋꿋이 걸어야 합니다. 설령 비난받고 세상사를 모르는 바보라는 비웃음을 들을지라도 결국은 주님께서 선사하시는 인생의 참평화와 행복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와 함께 이곳에
     
    
    
    

  2. guest 님의 말: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요즈음의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의 신앙생활은 영세하기 전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개신교신자인 남편의 천주교에 대한 선입견으로 비협조적이고
    제가 성당에 가서 예비자교리를 받는 것조차 비아냥거렸습니다
    함께 성당을 다니자고 애원을 했지만 성당에 가느니 절에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반대를 하였지요
    하지만 그때는 아무리 남편이 반대해도 성당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예비자교리를 하면서도 동네사람들과 친구에게 외인권면을 하여  
    세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참 그때 친구한테도 성당에 다니자고 권면을 하니 사실은
    고등학교때 영세를 하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후로 반대를 하던 남편도 영세를 하고 저와 남편이 증인이
    되어 조당에 걸렸던 친구와 친구남편의 조당을 풀게하고
    친구남편도 영세를 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저보다
    친구와 친구 남편이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당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모범적인 성가정으로 변했지요

    하지만  요즈음의 저의 신앙생활은
     예전에 반대하던 남편은 저 보다 더 열심히 성당에 다니고 
    봉사활동도 저 보다 더 열심히....
    예전보다 상황이 더 나뻐 진것도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지금의 저의 모습은 예전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인권면도 냉담자회두도 봉사활동도 피정이나 성지순례등
    모두 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요
    언젠가는 (여건이 좋아지면)예전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외인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저의 모습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예전생각도  많이 나고 ...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예전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

    묵상하며

    ♬ 우리와 함께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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