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녀 마르타 기념일(7/29)


    마르타 성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나흘이나 무덤에 묻혀 있던 라자로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머무르실 때 언니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으나 동생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주님의 이 말씀에 따라 마르타 성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마리아 성녀는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가르침이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에게서 완성된다(제1독서).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지막 날에 오빠 라자로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믿음을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당신을 믿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임을 믿는지 물으신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마르타 성녀의 기념일에는 라자로의 부활에 관한 요한 복음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를 방문하시는 루카 복음의 장면(10,38-42)도 봉독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주님을 시중드는 데 분주한 반면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만 듣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리아에게 언니를 도우라고 일러 주십사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이며,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학생 시절, 중세 독일의 위대한 신비주의 사상가였던 도미니코회 사제 에크하르트의 『독일어 설교』에서 루카 복음의 이 대목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받은 인상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주석은 마르타로 상징되는 활동적 삶보다 마리아가 대표하는 관상 생활의 우위성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마르타를 삶의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깊이 성숙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관상적 사랑을 잘 알고 있으며, 이제 마음에서 우러나와 주님께 봉사하는 것으로 그 사랑의 열매를 보여 줍니다. 그 반면, 마리아는 이제 막 영성적 기쁨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아직은 봉사를 통하여 사랑의 결실을 맺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마르타가 주님께 한 부탁은 동생에 대한 질투나 불평이 아니라 마리아가 혹시 영적인 위로에만 집착한 나머지 ‘섬기는 삶’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하는 진심 어린 염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마리아에 관하여 하신 말씀 또한 마르타에 대한 힐난이 아니라 마리아가 마르타의 바람대로 활동과 관상을 통합하는 길을 잘 가리라는 믿음을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르타 성녀를 기억하면서 저도 주님께서 주신 봉사와 기도의 보화를 잘 간직하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힘쓰리라 다짐해 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부활을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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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녀 마르타 기념일(7/29)


      마르타 성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나흘이나 무덤에 묻혀 있던 라자로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머무르실 때 언니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으나 동생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주님의 이 말씀에 따라 마르타 성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마리아 성녀는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가르침이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에게서 완성된다(제1독서).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지막 날에 오빠 라자로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믿음을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당신을 믿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임을 믿는지 물으신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마르타 성녀의 기념일에는 라자로의 부활에 관한 요한 복음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를 방문하시는 루카 복음의 장면(10,38-42)도 봉독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주님을 시중드는 데 분주한 반면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만 듣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리아에게 언니를 도우라고 일러 주십사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이며,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학생 시절, 중세 독일의 위대한 신비주의 사상가였던 도미니코회 사제 에크하르트의 『독일어 설교』에서 루카 복음의 이 대목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받은 인상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주석은 마르타로 상징되는 활동적 삶보다 마리아가 대표하는 관상 생활의 우위성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마르타를 삶의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깊이 성숙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관상적 사랑을 잘 알고 있으며, 이제 마음에서 우러나와 주님께 봉사하는 것으로 그 사랑의 열매를 보여 줍니다. 그 반면, 마리아는 이제 막 영성적 기쁨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아직은 봉사를 통하여 사랑의 결실을 맺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마르타가 주님께 한 부탁은 동생에 대한 질투나 불평이 아니라 마리아가 혹시 영적인 위로에만 집착한 나머지 ‘섬기는 삶’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하는 진심 어린 염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마리아에 관하여 하신 말씀 또한 마르타에 대한 힐난이 아니라 마리아가 마르타의 바람대로 활동과 관상을 통합하는 길을 잘 가리라는 믿음을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르타 성녀를 기억하면서 저도 주님께서 주신 봉사와 기도의 보화를 잘 간직하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힘쓰리라 다짐해 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부활을 만나리라
     
    
    
    

  2. guest 님의 말: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르타의 믿음이 부러웠습니다
    저도 마르타처럼 믿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반성이 되었구요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고 싶습니다
    저에게 마르타의 믿음이 있으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언제나처럼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정도로...
    그런데도 언제나 저의 머릿 속에서 잊지 않고 생각나는 것이
    있지요 바로 “복음묵상” 입니다
    바쁘면 바쁜대로 시간이 나는대로 엉터리라도 “복음묵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복음묵상을 하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예전보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에
    “복음묵상”만이라도 해야 신앙인으로 해야 할 의무를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사실 정말 하기 싫은 날도 많습니다
    “복음묵상”주제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구요
    몇 년동안 “복음묵상”을 했지만 아직도 헤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 잡고 있습니다
    봉사활동도 신앙생활도 평일미사도 예전보다 하지 못하고 있는데
    “복음묵상”만이라도 해야 한다고 
    신앙생활은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힘들고 어렵다해도
    영생을 얻게 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 그랬습니다 주님!
    지금의 저의 여건이 예전보다 못하다 할지라도 
    봉사활동이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해도
    지금의 저의 처지에 맞게 비관하지 않으며
    묵묵히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마르타의 믿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해도
    마르타의 믿음이 부럽다 해도
    마르타의 믿음을 본받아  노력만이라도 해야 한다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복음묵상”아라도 열심히 꾀부리지 않으며...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하신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 알렐루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아멘
     


    ♬ 부활을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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