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월요일(10/13)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출생이 서로 다른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 관한 창세기의 이야기를 우의적으로, 곧 비유적인 뜻으로 해석한다. 여종의 아들은 옛 계약을, 자유로운 부인의 아들은 새 계약을 상징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의 표징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인 당신이 이 세대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다고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4,22-24.26-27.31─5,1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줄곧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징’밖에는 주어질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 세대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입니다. 지금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폐단을 우리 대부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아집과 탐욕과 분노로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황폐하게 만듭니다. 이웃과 진정한 친교를 나누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이나 시기심에 따라 그들을 대하기 일쑤이고, 약한 이들에게 정의와 애덕을 베풀기보다는 무시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대하기까지 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행하는 불의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오히려 한몫 보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요나의 표징’만이 주어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는 먼저 자신의 회심 없이는 세상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스스로의 쇄신 없이 ‘악한 세대’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헛된 기대에서 깨어나기를 분명히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대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희망을 발견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요나의 표징’은 회개의 촉구일뿐더러 ‘예수님의 현존’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권력과 능력이 아니라 당신과의 오롯한 만남을 통하여 우리가 새롭게 바뀌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도록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한 세대’에는 윤리적 죄만이 아니라 힘과 이익과 쾌락을 우선시하는 세상의 논리에 눈먼 우리의 불신앙도 포함됩니다. ‘요나의 표징’은 우리에게 죄와 불신앙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요나의 표징’은 다름 아닌 ‘자유의 표징’입니다. 참된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 안에서 변화의 희망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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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8주간 월요일(10/13)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출생이 서로 다른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 관한 창세기의 이야기를 우의적으로, 곧 비유적인 뜻으로 해석한다. 여종의 아들은 옛 계약을, 자유로운 부인의 아들은 새 계약을 상징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의 표징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인 당신이 이 세대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다고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4,22-24.26-27.31─5,1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줄곧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징’밖에는 주어질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 세대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입니다. 지금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폐단을 우리 대부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아집과 탐욕과 분노로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황폐하게 만듭니다. 이웃과 진정한 친교를 나누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이나 시기심에 따라 그들을 대하기 일쑤이고, 약한 이들에게 정의와 애덕을 베풀기보다는 무시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대하기까지 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행하는 불의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오히려 한몫 보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요나의 표징’만이 주어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는 먼저 자신의 회심 없이는 세상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스스로의 쇄신 없이 ‘악한 세대’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헛된 기대에서 깨어나기를 분명히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대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희망을 발견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요나의 표징’은 회개의 촉구일뿐더러 ‘예수님의 현존’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권력과 능력이 아니라 당신과의 오롯한 만남을 통하여 우리가 새롭게 바뀌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도록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한 세대’에는 윤리적 죄만이 아니라 힘과 이익과 쾌락을 우선시하는 세상의 논리에 눈먼 우리의 불신앙도 포함됩니다. ‘요나의 표징’은 우리에게 죄와 불신앙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요나의 표징’은 다름 아닌 ‘자유의 표징’입니다. 참된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 안에서 변화의 희망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리스도의 향기
    
    
    

  2. guest 님의 말: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방인임에도 남방여왕과 니느웨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다는 말씀이 가슴이 뭉쿨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봤습니다
    당신의 자녀이면서 얼마나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을 했는지...
    당신의 말씀을  전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당신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따랐는지...
    아니었습니다
    저는  외인만도 못했습니다
    당신의 자녀이면서도 조금만 힘들면 당신을 외면하고 당신을 원망하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당신께서 저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당신을 멀리했습니다
    당신의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제 뜻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변덕이 날 때면  당신을 엄청 사랑하는 척...
    당신을 진심으로 믿는 척...
    성당에서의 봉사도 기분에 따라 ...
    조금만 힘들면 포기하고 방관하였습니다
    무거운 짊을 짊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남들처럼 폼 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께 등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복음묵상도 하기 싫었습니다 왜?
    복음묵상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되니
    어느 때는그런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들은  복음묵상을 하지 않아도 모두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는 매일 복음묵상을 하면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의 그런 생각자체가 교만과 오만에서 나오는 것임을....
    하지만 알면서도 자존심이 상하기도 합니다

    주님!
    제가 이렇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제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녀이면서도 외인만도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한 형제 자매들인데도 서로 미워하고 협조하지 않고
    등을 돌리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방인이면서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까지
    온 남방여왕과 니느웨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이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저의 뜻대로 저의 마음대로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려는노력을 많이 햇는데
    요즈음은 저의 신앙심도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자녀가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힘들고 어렵다는 핑계로 이방인만도 못한 신앙생활을 하여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으며
    더도 덜도 말고 기본만이라도 지키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기본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당신께서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는 너그럽고 자비롭도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아멘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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