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연중 제2주일 (일치 주간)(1/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오늘 전례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신앙 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주님! 묵고 계신 데가 어디인지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갈망이 진실한 것이므로 “와서 보아라.”라고 초대받게 됩니다. 주님의 초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형제자매의 공동체로서 더욱 일치되기를 간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을 후계자로 선발한 엘리는 주님께서 그를 직접 부르시는 것에 대한 응답을 준비시킨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독려한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여러분의 몸이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제2독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안드레아는 그분의 초대에 응하여 예수님과 함께 묵고 믿었다. 그리고 형 시몬에게 가서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 하며 예수님께 데려간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눈여겨보시고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하시며 제자로 삼는다(복음).
    제1독서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3,3ㄴ-10.19 그 무렵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6,13ㄷ-15ㄱ.17-20 형제 여러분,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2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능동적인 기질을 가진 안드레아는 예수님께 단도직입으로 대화를 텄고 그분과 함께 묵게 되었다. 예수님과 공유했던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복음서에는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며 시각까지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이분이야말로 메시아시다!’는 고백까지는 적어도 빛과 어둠을 가로지르는 질곡이 있었을 것이다. 주님을 만나는 여정은 탐험과도 같다. 이끌림만 있을 뿐 정체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현장 체험으로 세계의 몇몇 그리스도인 공동체 마을에 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공동체의 사립문을 들어서자 아직도 복음을 해석 없이 따르고 사는 노아의 후예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고백하는 신앙은 무엇이었으며, 사제로서 선포한 것들은 정말 나의 믿음이었는가? 달은 어디에서 보아도 같은 달이지만 창틈으로 보는 모습과 마당에 나와서 보는 모습, 그리고 동산에 올라가 보는 모습은 같지 않다. 깊숙이 들어가는 탐험에는 특별한 세계가 있다. 수도자나 사제의 성소를 바라보는 것도 그와 같다. 전해 듣는 것과, 직접 성소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들어가 살면서 체험하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주님을 만나는 데는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문을 두드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붙잡혀 끌려가는 현상이 나타나거든 몸을 맡겨야 한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성소자는 성소에 뜻을 둔 이들을 벗 삼아 함께 어울리려 대화하고 토론하며 생활과 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유유상종의 공동체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나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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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주일 (일치 주간)(1/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오늘 전례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신앙 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주님! 묵고 계신 데가 어디인지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갈망이 진실한 것이므로 “와서 보아라.”라고 초대받게 됩니다. 주님의 초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형제자매의 공동체로서 더욱 일치되기를 간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을 후계자로 선발한 엘리는 주님께서 그를 직접 부르시는 것에 대한 응답을 준비시킨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독려한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여러분의 몸이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제2독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안드레아는 그분의 초대에 응하여 예수님과 함께 묵고 믿었다. 그리고 형 시몬에게 가서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 하며 예수님께 데려간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눈여겨보시고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하시며 제자로 삼는다(복음).
      제1독서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3,3ㄴ-10.19 그 무렵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6,13ㄷ-15ㄱ.17-20 형제 여러분,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2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능동적인 기질을 가진 안드레아는 예수님께 단도직입으로 대화를 텄고 그분과 함께 묵게 되었다. 예수님과 공유했던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복음서에는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며 시각까지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이분이야말로 메시아시다!’는 고백까지는 적어도 빛과 어둠을 가로지르는 질곡이 있었을 것이다. 주님을 만나는 여정은 탐험과도 같다. 이끌림만 있을 뿐 정체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현장 체험으로 세계의 몇몇 그리스도인 공동체 마을에 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공동체의 사립문을 들어서자 아직도 복음을 해석 없이 따르고 사는 노아의 후예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고백하는 신앙은 무엇이었으며, 사제로서 선포한 것들은 정말 나의 믿음이었는가? 달은 어디에서 보아도 같은 달이지만 창틈으로 보는 모습과 마당에 나와서 보는 모습, 그리고 동산에 올라가 보는 모습은 같지 않다. 깊숙이 들어가는 탐험에는 특별한 세계가 있다. 수도자나 사제의 성소를 바라보는 것도 그와 같다. 전해 듣는 것과, 직접 성소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들어가 살면서 체험하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주님을 만나는 데는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문을 두드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붙잡혀 끌려가는 현상이 나타나거든 몸을 맡겨야 한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성소자는 성소에 뜻을 둔 이들을 벗 삼아 함께 어울리려 대화하고 토론하며 생활과 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유유상종의 공동체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나 될 때
    
    
    

  2. guest 님의 말:

    “와서 보아라.”
    주님!
    오늘복음에서 궁금해 하는 제자들에게 당신께서는
    “와서 보아라.”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깨닫습니다
    사실 그동안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어느 때는 장난처럼 가볍게 우스개 소리까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묵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처럼 깨달았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오늘복음을 묵상할 때의 기분이 얼마나 갈지ㅠㅠㅠ
    제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말씀 드리면 저의 변덕스러움이
    얼마나 갈지 지금마음 같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흘려보내며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게으름과
    부족한 신앙심이 항상 걸림돌이지요
    그래도 미워도 다시한번~~~~
    새해가 시작 된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새롭게 시작하렵니다
    당신께서 “와서 보어라”하신 것처럼
    당신이 계신 성당에 자주 가서 당신이 계신 감실을 바라보면서
    기도도 하면서 새해 인사를 하고 다짐도 하면서 그렇게~~~
    여건이 되는대로….. 아니!
    만들어서라도 당신만을 생각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와서 보어라” 하신 당신을 생각하며
    아멘

    “와서 보아라.”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와서 보아라.”
    주님!
    오늘복음에서 궁금해 하는 제자들에게 당신께서는
    “와서 보아라.”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깨닫습니다
    사실 그동안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어느 때는 장난처럼 가볍게 우스개 소리까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묵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처럼 깨달았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오늘복음을 묵상할 때의 기분이 얼마나 갈지ㅠㅠㅠ
    제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말씀 드리면 저의 변덕스러움이
    얼마나 갈지 지금마음 같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흘려보내며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게으름과
    부족한 신앙심이 항상 걸림돌이지요
    그래도 미워도 다시한번~~~~
    새해가 시작 된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새롭게 시작하렵니다
    당신께서 “와서 보어라”하신 것처럼
    당신이 계신 성당에 자주 가서 당신이 계신 감실을 바라보면서
    기도도 하면서 새해 인사를 하고 다짐도 하면서 그렇게~~~
    여건이 되는대로….. 아니!
    만들어서라도 당신만을 생각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와서 보어라” 하신 당신을 생각하며
    아멘

    “와서 보아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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