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1/21)


    아녜스 성녀는 3세기 후반 또는 4세기 초반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열네 살 무렵의 어린 나이에 순교하였다. 청혼을 거절한 데 대한 앙심을 품은 자의 고발에 따라 신자임이 드러났으나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유약한 나이에 보여 준 그녀의 위대한 신앙의 힘’을 높이 칭송하였다. 교회는 아녜스 성녀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증언하고자 정결을 지킨 순교자로 기억하고 있다. 성녀는 한 마리 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지위까지 부여한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대사제로 규정하면서 인성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의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의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손을 뻗어라!” 하시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진정한 사제가 되셨다(복음).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던 본디 모습으로 복구시키는 것으로, ‘하느님의 일’이다. 창조성이란 태어날 때 주어졌던 건강성, 건강한 몸, 건강한 관계, 건강한 자아실현이다. 나병을 비롯한 질병과 지체 장애, 정신 장애는 창조성이 어긋난 상태이기에 될 수 있는 대로 시급히 복구되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의 일에 법을 들이대면 법이 하느님 위에 있게 된다. 안식일은 바빌론 포로 시대의 강제 노동과 억압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진 계명이다. 히브리 말로 ‘샤바트’라 하는데, ‘주님의 것’, ‘몸의 평화’라는 의미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창조성에 어긋날 위험 수위의 건강 상태를 평화의 몸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감정적 충돌이나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얼굴 대하는 것마저 피하는 일까지 발전해서는 안 된다. 서로 괴로움을 주는 일이고 주변 사람의 평화도 불길해진다. 이것은 손발과 얼굴이 장애인 셈이다. 공동체의 사랑과 성장이 손상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는 안식일을 불문하고 화해부터 하라고 가르치신다. 어차피 감정은 풀리게 되어 있는데 그동안 일부러 괴로운 시간을 누릴 필요가 없다. 만일 결별할 날까지 상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어차피 마지막이니 빨리 화해해야 할 것이다. 나의 자존심보다는 공동체의 평화를 더 크게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한쪽이 먼저 풀면 풀리게 되어 있다. 서둘러 화해해야 한다. 용서를 청하는 일에는 조건이 필요 없어야 한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Dona nobis pacem Domine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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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1/21)


      아녜스 성녀는 3세기 후반 또는 4세기 초반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열네 살 무렵의 어린 나이에 순교하였다. 청혼을 거절한 데 대한 앙심을 품은 자의 고발에 따라 신자임이 드러났으나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유약한 나이에 보여 준 그녀의 위대한 신앙의 힘’을 높이 칭송하였다. 교회는 아녜스 성녀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증언하고자 정결을 지킨 순교자로 기억하고 있다. 성녀는 한 마리 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지위까지 부여한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대사제로 규정하면서 인성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의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의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손을 뻗어라!” 하시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진정한 사제가 되셨다(복음).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던 본디 모습으로 복구시키는 것으로, ‘하느님의 일’이다. 창조성이란 태어날 때 주어졌던 건강성, 건강한 몸, 건강한 관계, 건강한 자아실현이다. 나병을 비롯한 질병과 지체 장애, 정신 장애는 창조성이 어긋난 상태이기에 될 수 있는 대로 시급히 복구되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의 일에 법을 들이대면 법이 하느님 위에 있게 된다. 안식일은 바빌론 포로 시대의 강제 노동과 억압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진 계명이다. 히브리 말로 ‘샤바트’라 하는데, ‘주님의 것’, ‘몸의 평화’라는 의미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창조성에 어긋날 위험 수위의 건강 상태를 평화의 몸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감정적 충돌이나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얼굴 대하는 것마저 피하는 일까지 발전해서는 안 된다. 서로 괴로움을 주는 일이고 주변 사람의 평화도 불길해진다. 이것은 손발과 얼굴이 장애인 셈이다. 공동체의 사랑과 성장이 손상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는 안식일을 불문하고 화해부터 하라고 가르치신다. 어차피 감정은 풀리게 되어 있는데 그동안 일부러 괴로운 시간을 누릴 필요가 없다. 만일 결별할 날까지 상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어차피 마지막이니 빨리 화해해야 할 것이다. 나의 자존심보다는 공동체의 평화를 더 크게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한쪽이 먼저 풀면 풀리게 되어 있다. 서둘러 화해해야 한다. 용서를 청하는 일에는 조건이 필요 없어야 한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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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na nobis pacem Domine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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