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예수님은 산 이들의 구원을 위한 대사제이시다.
사제는 제단에 바칠 제물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에 제물이 필요 없으시며,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제1독서).
바칠 예물도 없어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는 갈릴래아의 가난한 병자들이
대사제 예수님께 몰려든다.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머지않아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셔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악령들이 고백한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한 번에 다 이루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25―8,6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사제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대사제는 예물과 제물을 바치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사제도 무엇인가 바칠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시면 사제가 되지 못하십니다.
율법에 따라 예물을 바치는 사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를 받은 대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상이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소에서 봉직합니다.
하느님께서 “자,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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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목요일(1/22)
말씀의 초대
예수님은 산 이들의 구원을 위한 대사제이시다. 사제는 제단에 바칠 제물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에 제물이 필요 없으시며,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제1독서). 바칠 예물도 없어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는 갈릴래아의 가난한 병자들이 대사제 예수님께 몰려든다.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머지않아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셔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악령들이 고백한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한 번에 다 이루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25―8,6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사제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대사제는 예물과 제물을 바치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사제도 무엇인가 바칠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시면 사제가 되지 못하십니다. 율법에 따라 예물을 바치는 사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를 받은 대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상이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소에서 봉직합니다. 하느님께서 “자,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생활과 노동에 거침없는 태도를 가진 우리 마을의 가족을 대하면 힘이 느껴지고 행복하다. 이들처럼 무슨 일이건 자신에게 맡겨진 일과 해야 할 일이라면 따지거나 조건 없이 해 내는 이들이 있다.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가족의 먹거리와 빨래는 물론이고, 자식들의 병치레와 용돈, 학교 일까지 챙긴다. 심지어 남편 사업이 잘못되고 빚더미에 앉게 되면 그 뒤치다꺼리에 정신없고, 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파출부로 뛰어서라도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친척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어머니 몫이다. 가부장적 전통에서 세상은 남성이 주무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머니의 힘이 우리 삶과 역사를 떠받쳐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구역장과 반장, 레지오 마리애 단장 등 소공동체의 책임자들이 본당 챙기는 일에 거침없음으로써 본당 사목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슨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쉴 새 없이 요구되는 궂은일을 묵묵히 감당한다.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모성’이라 생각한다. 모성은 지식이나 사상이 아니라 인정이며 사람의 도리고 영성이다. 그러나 불행하다. 모성이 사라져 가는 시대! 이는 금융 자본의 경제 구도와 거의 쓸모없는 교육열과 정신노동, 경제 문제로 판단하는 결혼과 자녀 출산 등에서 온 것이다. 재앙이다. 모성은 삶을 창조해 내는 사랑이며 하느님의 마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병고에 시달리거나 마귀 들린 이들을 무상으로 고쳐 주셨다. 치료받을 길 없는 가난한 무리가 먼 고장에서까지 연일 몰려들어도, 예수님의 연민의 눈길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인 모성은 당신 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거침없이 받아 주셨다. 어머니와 하느님의 일에는 걸리거나 막힘이 없다. ‘대한민국 어머님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