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연중 제2주간 금요일(1/23)


    말씀의 초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 관계란 순종과 축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앙의 역사를 이해하는 바탕에서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계약(신약)의 중개자로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중개자시므로 다른 계약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제1독서). 새 계약의 시대를 여시는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발하신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는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8,6-13 형제 여러분,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저 첫째 계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제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불의를 너그럽게 보아주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소비문화 시대의 복음적 삶에 관한 성찰에서 악령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악령의 실체와 존재 양식의 구조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다. 아담의 유혹자와 카인의 질투심, 노아 시대의 환락과 바벨탑의 무모함, 광야의 예수님을 유혹하던 악마와 그 세력들이 엄청난 물신 우상의 세력으로 성장해 우리 시대의 창조의 질서와 복음적 삶을 포위하고 있다. 돈이 대접받는 시대에 악령은 당당하게 군림한다. 금융과 기술 과학을 떠받드는 악령의 위용은, 복음을 한입에 넣어 삼키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패권 시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시대의 위용은 하늘을 덮고 사람들은 이기와 물신의 우상에 취해 버렸는데 무엇 하나도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이러한 무력감에서 ‘사제란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물었을 때 복음서에서 처음 보는 듯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예수님께서 선발하신 사제가 맞다면 내게도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행적에서 병자의 치유가 묵상의 주제였다. 악령이란 추상적이며 신화시대의 표현이라고만 생각한 가운데 악령 추방의 행적을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이유는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복음을 선포토록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다. 제자의 정체성에 대하여 더하거나 뺌도, 별다른 해석도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왜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이 강조되지 않고 실종된 것일까? 복음서를 신화의 경전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문제가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이 문화의 복음에 압사되고 있는 사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께서 살아 계심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현대’, ‘과학 기술’, ‘문화생활’ 등의 옷을 걸치고 위세를 떨치는 악령의 집단을 추방하는 일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로서, 제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세상에 외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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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주간 금요일(1/23)


      말씀의 초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 관계란 순종과 축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앙의 역사를 이해하는 바탕에서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계약(신약)의 중개자로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중개자시므로 다른 계약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제1독서). 새 계약의 시대를 여시는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발하신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는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8,6-13 형제 여러분,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저 첫째 계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제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불의를 너그럽게 보아주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소비문화 시대의 복음적 삶에 관한 성찰에서 악령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악령의 실체와 존재 양식의 구조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다. 아담의 유혹자와 카인의 질투심, 노아 시대의 환락과 바벨탑의 무모함, 광야의 예수님을 유혹하던 악마와 그 세력들이 엄청난 물신 우상의 세력으로 성장해 우리 시대의 창조의 질서와 복음적 삶을 포위하고 있다. 돈이 대접받는 시대에 악령은 당당하게 군림한다. 금융과 기술 과학을 떠받드는 악령의 위용은, 복음을 한입에 넣어 삼키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패권 시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시대의 위용은 하늘을 덮고 사람들은 이기와 물신의 우상에 취해 버렸는데 무엇 하나도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이러한 무력감에서 ‘사제란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물었을 때 복음서에서 처음 보는 듯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예수님께서 선발하신 사제가 맞다면 내게도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행적에서 병자의 치유가 묵상의 주제였다. 악령이란 추상적이며 신화시대의 표현이라고만 생각한 가운데 악령 추방의 행적을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이유는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복음을 선포토록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다. 제자의 정체성에 대하여 더하거나 뺌도, 별다른 해석도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왜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이 강조되지 않고 실종된 것일까? 복음서를 신화의 경전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문제가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이 문화의 복음에 압사되고 있는 사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께서 살아 계심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현대’, ‘과학 기술’, ‘문화생활’ 등의 옷을 걸치고 위세를 떨치는 악령의 집단을 추방하는 일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로서, 제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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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외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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