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연중 제3주간 화요일(1/27)


    말씀의 초대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치며 올리는 구약의 제사는 종교적 정화 의식이며 스승과 교단에 대한 결사 의식으로 이해하였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단 한 번의 결정적인 것임을 설명한다. 이 은총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는 데 근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한 번의 세례가 종교적 구원 의미를 갖는다면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구원을 완성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수도자와 사제는 출가자이다. 출가자는 저희들끼리 벗으로 삼고 무리 지어 살아가는 전통이 있다. 신앙 안에서 새로운 형제자매의 혈연을 맺는 것이다. 하느님의 혈연은 광야의 악마를 물리치고 당신의 말씀으로 사는 삶으로 엮인다. 생리적인 삶을 선택의 삶으로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본성과 이성으로 살아간다. 본성이란 먹고, 자고, 짝을 이루고, 위험에서 피하는 욕구와 능력 따위이다. 이성이란 본성에 대한 반성의 의지 능력으로서 절제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이다. 배고파 밥을 챙겨 먹는 것은 본성이지만 곁의 굶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 밥을 나누는 일은 이성의 작용이다. 교육이란 본성의 욕구에 대한 자기 제어력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이성으로 사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으로 자기 삶과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교양과 덕행, 예의염치, 소명과 헌신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은 한결같이 이성이 본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랑의 화신 예수님, 자비심의 석가모니불, 사람의 도리 공자님, 도덕 교사 톨스토이 등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이 곧 그리스도인이다. 출가자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신앙을 완성하고자 본성적 차원을 버리고 신앙과 이성의 바다에 투신한 이들이다. 이성을 따라 살지 않으면 자기가 사는 것을 이성이라고 여기게 된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는 형제 우리는 친구 / 배진구 베드로 신부님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주간 화요일(1/27)


      말씀의 초대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치며 올리는 구약의 제사는 종교적 정화 의식이며 스승과 교단에 대한 결사 의식으로 이해하였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단 한 번의 결정적인 것임을 설명한다. 이 은총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는 데 근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한 번의 세례가 종교적 구원 의미를 갖는다면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구원을 완성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수도자와 사제는 출가자이다. 출가자는 저희들끼리 벗으로 삼고 무리 지어 살아가는 전통이 있다. 신앙 안에서 새로운 형제자매의 혈연을 맺는 것이다. 하느님의 혈연은 광야의 악마를 물리치고 당신의 말씀으로 사는 삶으로 엮인다. 생리적인 삶을 선택의 삶으로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본성과 이성으로 살아간다. 본성이란 먹고, 자고, 짝을 이루고, 위험에서 피하는 욕구와 능력 따위이다. 이성이란 본성에 대한 반성의 의지 능력으로서 절제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이다. 배고파 밥을 챙겨 먹는 것은 본성이지만 곁의 굶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 밥을 나누는 일은 이성의 작용이다. 교육이란 본성의 욕구에 대한 자기 제어력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이성으로 사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으로 자기 삶과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교양과 덕행, 예의염치, 소명과 헌신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은 한결같이 이성이 본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랑의 화신 예수님, 자비심의 석가모니불, 사람의 도리 공자님, 도덕 교사 톨스토이 등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이 곧 그리스도인이다. 출가자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신앙을 완성하고자 본성적 차원을 버리고 신앙과 이성의 바다에 투신한 이들이다. 이성을 따라 살지 않으면 자기가 사는 것을 이성이라고 여기게 된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는 형제 우리는 친구 / 배진구 베드로 신부님
    
    
    

  2. guest 님의 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

    요즈음…

    아니! 새해가 시작되고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동안 열심히 했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사제를 위한 기도

     가정기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속은 많이 했는데  공수표를 날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저의 게으름때문에…
    기도할 여건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주변환경으로 기도할수가 없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
    하기싫으면 솔직하게 하기 싫다고 하면 되는 것을…..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
    참 핑계를 많이 댑니다
    신앙인으로써 솔직하지 못한 저의 핑계가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부끄럽습니다
    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말씀이 저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기때문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자녀라고 하면서…
    꼴값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당신의 자녀답게 살겠다고 다짐도 했는데…
    입으로만 외치는 빈수레가 요란한 신앙가가 아닌

    속과 겉이 꽉찬 신앙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햇었는데….
    그 다짐은 누구에게 누가 한 것인지….

    오늘복음말씀 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말씀하시는데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공수표만 날린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기도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한시간도 아니고 족히 30분이면 마음이 편한 것을….
    이 핑계 저 이유를 대면서 기도하지 않는 자신이 진정한 신앙인인가
    반성을 해봅니다
    30분기도로 하루가 편하고 기쁘고 행복한 것을 이미 체험했었는데도…….
    까마귀고기를 먹고 또 먹다보니 기본적인 기도조차도 하지않으면서
    핑계거리만 찾는 얌체같은 저의 마음보가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새해에 다짐했던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의지가 약한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부터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겟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넘어져도 일어서는 오뚜기처럼 7전8기의 정신으로….
    새롭게 기쁘게 행복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들으소서, 주님, 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나이다.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저를 버리지 마소서

    아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묵상하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