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사순 제1주간 수요일(2/25)


    말씀의 초대
    니네베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요나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즉시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회개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하느님의 재앙을 모면한다(제1독서). 자기들이 경탄할 만한 표징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개탄하신다. “악한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 자신이 표징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몸이 아프다는 것은 치유를 요구하는 생체의 반응이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위험 상태도 감지할 수 없다. 가정이나 공동체 생활에서 심기가 불편한 것은 삶의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신호다. 시대의 이상 징후는 사회적 건강성을 성찰케 한다. 우리 삶의 주변에는 사라지거나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적지 않다. 점심 도시락,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풍경, 대가족제, 어머니와 대한민국 아주머니의 힘 등이 사라졌고, 가족은 있어도 가정이 없다. 노동과 상부상조, 예의염치, 의협심, 마을, 가내 수공업도 사라져 버렸다. 공동체가 해체되었다는 징표들이다. 그러나 쓸모없고 나쁜 것들은 날이 갈수록 기승이다. 늘어나는 암 진단과 중환자실, 자격증, 명품 브랜드, 전자 기기, 외식, 퇴폐업소, 게임, 복권, 중독증, 이혼, 우울증, 핵 발전소 ……. 과학 기술과 금융 자본주의가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들이다. 종말론적 구원의 성사인 교회는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가? 타락한 니네베의 도시에서 회개를 외친 요나 예언자가 구원의 징표가 되었듯이, 인간성과 영성이 한없이 추락하는 흉측한 소비문화의 도시에서 교회는 다가오는 종말의 날과 새날의 빛, 죽음과 생명 가운데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고 외치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 기술 문명과 소비문화의 혜택에서 스스로 물러나 바위가 있는 겟세마니 언덕으로 가야 한다. 불편한 생활, 고행과 극기의 삶이 우리 시대를 치유하는 유일한 성사다. ‘우리가 보여 줄 것은 성체성사의 기적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하시고는 다음 날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바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성체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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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1주간 수요일(2/25)


      말씀의 초대
      니네베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요나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즉시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회개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하느님의 재앙을 모면한다(제1독서). 자기들이 경탄할 만한 표징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개탄하신다. “악한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 자신이 표징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몸이 아프다는 것은 치유를 요구하는 생체의 반응이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위험 상태도 감지할 수 없다. 가정이나 공동체 생활에서 심기가 불편한 것은 삶의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신호다. 시대의 이상 징후는 사회적 건강성을 성찰케 한다. 우리 삶의 주변에는 사라지거나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적지 않다. 점심 도시락,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풍경, 대가족제, 어머니와 대한민국 아주머니의 힘 등이 사라졌고, 가족은 있어도 가정이 없다. 노동과 상부상조, 예의염치, 의협심, 마을, 가내 수공업도 사라져 버렸다. 공동체가 해체되었다는 징표들이다. 그러나 쓸모없고 나쁜 것들은 날이 갈수록 기승이다. 늘어나는 암 진단과 중환자실, 자격증, 명품 브랜드, 전자 기기, 외식, 퇴폐업소, 게임, 복권, 중독증, 이혼, 우울증, 핵 발전소 ……. 과학 기술과 금융 자본주의가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들이다. 종말론적 구원의 성사인 교회는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가? 타락한 니네베의 도시에서 회개를 외친 요나 예언자가 구원의 징표가 되었듯이, 인간성과 영성이 한없이 추락하는 흉측한 소비문화의 도시에서 교회는 다가오는 종말의 날과 새날의 빛, 죽음과 생명 가운데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고 외치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 기술 문명과 소비문화의 혜택에서 스스로 물러나 바위가 있는 겟세마니 언덕으로 가야 한다. 불편한 생활, 고행과 극기의 삶이 우리 시대를 치유하는 유일한 성사다. ‘우리가 보여 줄 것은 성체성사의 기적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하시고는 다음 날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바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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