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성주간 수요일(4/01)


    말씀의 초대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서 종은 주 하느님께서 자기를 가르치시면서 맡겨 주시는 사명을 수행하며 겪게 되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는 모욕과 수모를 피하려 하지 않고, 하느님께 순종하여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에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제1독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팔아넘기지만, 주님께서는 당신께 다가오는 수난을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신다. 불행한 것은 배신을 당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배반하는 유다이다(복음).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9ㄴ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제자’인데, 주님의 종과 유다 이스카리옷의 모습은 너무 역설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사야서에서 사용된 히브리 말 단어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 이라는 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자로서 주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가르치시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을 격려할 뿐 아니라 매질과 모욕과 수모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와 함께 계시면서 자기를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스로 제자의 신분을 저버립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 했다는 것은 이미 그분께 배우는 사람이기를 그만둔다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고 말씀하시는데, 떠나가는 주체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것이 당신의 길이기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렇지만 유다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갑니다. 죽임을 당하실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이들과 손을 잡습니다. 성주간의 성삼일 전례를 앞둔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하며 어떠한 운명이 기다리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길을 따라 뒤로 물러서지 않고 인내하면서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팔아 내 뜻을 이루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처음부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죽음을 맞게 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제자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지도,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 불행으로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저항하지 않으시면서 사랑에 호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위대하고 고결합니다. 비참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의 신분을 내던지고 그 길을 벗어나려 하는 유다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통의 길 주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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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성주간 수요일(4/01)


      말씀의 초대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서 종은 주 하느님께서 자기를 가르치시면서 맡겨 주시는 사명을 수행하며 겪게 되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는 모욕과 수모를 피하려 하지 않고, 하느님께 순종하여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에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제1독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팔아넘기지만, 주님께서는 당신께 다가오는 수난을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신다. 불행한 것은 배신을 당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배반하는 유다이다(복음).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9ㄴ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제자’인데, 주님의 종과 유다 이스카리옷의 모습은 너무 역설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사야서에서 사용된 히브리 말 단어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 이라는 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자로서 주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가르치시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을 격려할 뿐 아니라 매질과 모욕과 수모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와 함께 계시면서 자기를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스로 제자의 신분을 저버립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 했다는 것은 이미 그분께 배우는 사람이기를 그만둔다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고 말씀하시는데, 떠나가는 주체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것이 당신의 길이기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렇지만 유다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갑니다. 죽임을 당하실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이들과 손을 잡습니다. 성주간의 성삼일 전례를 앞둔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하며 어떠한 운명이 기다리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길을 따라 뒤로 물러서지 않고 인내하면서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팔아 내 뜻을 이루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처음부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죽음을 맞게 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제자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지도,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 불행으로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저항하지 않으시면서 사랑에 호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위대하고 고결합니다. 비참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의 신분을 내던지고 그 길을 벗어나려 하는 유다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통의 길 주님의 길
     
    
    
    

  2. guest 님의 말: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주님!

    엊그네 머리에 재를 얹은 것 같은데 어느새 성주간이 돌아왔네요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다짐했던 일들을 실천하지 못해
    반성을 하면서 그야말로 반성만 하면서 복음묵상을 했지요
    그리;고 또 다시 다짐을 내년에는 꼭 실천을 하겠다는 ….
    하지만 언제나 공수표만 날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내년에는 다음에는 하면서 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이버성당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비록 지키지 못할지라도 저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쁘다는 생각도 들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말씀에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 뜨끔했습니다
    반성도 하면서 다짐도 하고….
    복음묵상을 통해서 저의 단점과 부족함 못된 심성 나쁜 습관 이기심 시기 질투 등등
    참 많은 것을 주고 받는 사이버성당에서의 복음묵상을 한지 10여년이 되지만
    아직도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신앙심을 반성하면서
    해마다 다짐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
    헬레나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며 반성하지 않는 외인만도 못한 신앙가 헬레나는
    되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자신있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신앙가 헬레나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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