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연중 제11주일(6/14)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여름의 햇볕과 비를 받으며 나무가 자라고 곡식과 온갖 작물들이 커 가듯이, 우리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심어 주신 하늘 나라의 씨앗이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씨앗이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오늘도 이 미사의 은총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서의 구원에 대한 약속은 유다 왕국의 멸망을 알리는 심판 선고에 이어서 나온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그분께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나라들의 힘에만 의존하려고 하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무의 연한 순을 다시 심으시고, 시든 나무를 살아나게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에 비유하신다. 농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곡식이 자라듯이 하느님 나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라난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나무가 되듯이 하느님 나라도 이처럼 놀랍게 자라난다(복음).
    제1독서
    <낮은 나무는 높이리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7,22-24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그제야 들의 모든 나무가 알게 되리라.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6-10 형제 여러분,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민족에게 구원에 대한 희망과 약속의 말씀이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됩니다. 향백나무 새순에서, 곧 유배 중에 있는 여호야킨 임금의 후손에게서 미래 왕국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갖 새들이 향백나무 아래 깃들이듯이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도 미래 왕국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맨드라미 씨앗처럼 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이것이 제대로 자라면 2-3미터 이상의 나무가 되어 온갖 새들의 안식처가 되기 때문에 겨자 나무는 정원에서 가꾸는 식물이 아니라 야생 식물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는 처음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거대한 나라로 성장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믿음이나 신앙,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것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제1독서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방에서도 제국의 위대함과 막강함을 웅장한 나무로 자주 표현합니다. 곧 제국 안에서 피난처와 보호를 구하는 백성들을 나뭇가지에 깃들이는 새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모든 민족이 한데 모여 그 안에서 주님의 보호와 은신처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웅장한 나무, 광대한 나라로 자라나게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땅에 뿌려진 씨앗이 저절로 자라나 열매를 맺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보이는 것”과 “믿음”을 대비시켜 설명하는데,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확신을 더 강조합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1코린 7,31 참조).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고통과 시련이 늘 뒤따를지도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의 생애가 이 사실을 증언하는데, 그래서일까요? 그는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나라가 이렇게까지 성장했구나 하고 자기 만족에 빠진다면 커다란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매일 그대로이고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는 듯하다고 해서 하느님 나라가 자라지 않고 요지부동이구나 하고 실망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자라나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 가운데에 그 나라가 자라났는지 여부는, 제2독서에서 선언하듯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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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1주일(6/14)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여름의 햇볕과 비를 받으며 나무가 자라고 곡식과 온갖 작물들이 커 가듯이, 우리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심어 주신 하늘 나라의 씨앗이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씨앗이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오늘도 이 미사의 은총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서의 구원에 대한 약속은 유다 왕국의 멸망을 알리는 심판 선고에 이어서 나온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그분께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나라들의 힘에만 의존하려고 하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무의 연한 순을 다시 심으시고, 시든 나무를 살아나게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에 비유하신다. 농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곡식이 자라듯이 하느님 나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라난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나무가 되듯이 하느님 나라도 이처럼 놀랍게 자라난다(복음).
      제1독서
      <낮은 나무는 높이리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7,22-24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그제야 들의 모든 나무가 알게 되리라.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6-10 형제 여러분,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민족에게 구원에 대한 희망과 약속의 말씀이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됩니다. 향백나무 새순에서, 곧 유배 중에 있는 여호야킨 임금의 후손에게서 미래 왕국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갖 새들이 향백나무 아래 깃들이듯이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도 미래 왕국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맨드라미 씨앗처럼 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이것이 제대로 자라면 2-3미터 이상의 나무가 되어 온갖 새들의 안식처가 되기 때문에 겨자 나무는 정원에서 가꾸는 식물이 아니라 야생 식물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는 처음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거대한 나라로 성장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믿음이나 신앙,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것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제1독서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방에서도 제국의 위대함과 막강함을 웅장한 나무로 자주 표현합니다. 곧 제국 안에서 피난처와 보호를 구하는 백성들을 나뭇가지에 깃들이는 새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모든 민족이 한데 모여 그 안에서 주님의 보호와 은신처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웅장한 나무, 광대한 나라로 자라나게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땅에 뿌려진 씨앗이 저절로 자라나 열매를 맺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보이는 것”과 “믿음”을 대비시켜 설명하는데,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확신을 더 강조합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1코린 7,31 참조).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고통과 시련이 늘 뒤따를지도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의 생애가 이 사실을 증언하는데, 그래서일까요? 그는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나라가 이렇게까지 성장했구나 하고 자기 만족에 빠진다면 커다란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매일 그대로이고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는 듯하다고 해서 하느님 나라가 자라지 않고 요지부동이구나 하고 실망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자라나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 가운데에 그 나라가 자라났는지 여부는, 제2독서에서 선언하듯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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