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연중 제11주간 금요일(6/19)


    말씀의 초대
    거짓 사도들을 물리치려고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내세우는 자랑거리들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그들과 논박을 벌인다. 물론 바오로도 이러한 자랑이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논리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적법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자기가 겪어야 했던 수고를 열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재물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또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가 판가름 난다(복음).
    제1독서
    <다른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나를 짓누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1,18.21ㄷ-30 형제 여러분,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누가 감히 자랑한다면, 어리석음에 빠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가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라고 계면쩍어하면서 말을 시작하지만, 사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랑을 잔뜩 늘어놓을 때 듣는 것을 민망해하면서도 정작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도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자랑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대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거짓 사도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바오로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온갖 수고와 고생과 고난을 겪었다고 밝히는 이유는, 코린토 신자들이 그런 기준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들이 그릇된 교설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지위와 학력과 재산이 뛰어나다고 해서 남다르게 대접받아야 하며 더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자기가 참된 사도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속된” 것입니다. 그런 “속됨”에 빠지지 않으려고 바오로는 즉시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가 비록 속된 세상에서 살아갈지언정, 속된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2코린 10,3). 그러니 속된 자랑거리나 자격을 많이 갖추고 있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이라고 하여 늘 특별나고 특출한 행동이나 선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마에 ‘성인’이라는 표찰을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성인도 우리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 가는 성인과 평범한 사람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재화를 나눌 때나 선행을 할 때에, 평범한 사람은 앞과 뒤를 충분히 재고 나서 ‘아니오’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성인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예’ 하고 대답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늘에 쌓은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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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1주간 금요일(6/19)


      말씀의 초대
      거짓 사도들을 물리치려고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내세우는 자랑거리들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그들과 논박을 벌인다. 물론 바오로도 이러한 자랑이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논리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적법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자기가 겪어야 했던 수고를 열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재물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또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가 판가름 난다(복음).
      제1독서
      <다른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나를 짓누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1,18.21ㄷ-30 형제 여러분,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누가 감히 자랑한다면, 어리석음에 빠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가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라고 계면쩍어하면서 말을 시작하지만, 사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랑을 잔뜩 늘어놓을 때 듣는 것을 민망해하면서도 정작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도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자랑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대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거짓 사도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바오로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온갖 수고와 고생과 고난을 겪었다고 밝히는 이유는, 코린토 신자들이 그런 기준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들이 그릇된 교설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지위와 학력과 재산이 뛰어나다고 해서 남다르게 대접받아야 하며 더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자기가 참된 사도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속된” 것입니다. 그런 “속됨”에 빠지지 않으려고 바오로는 즉시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가 비록 속된 세상에서 살아갈지언정, 속된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2코린 10,3). 그러니 속된 자랑거리나 자격을 많이 갖추고 있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이라고 하여 늘 특별나고 특출한 행동이나 선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마에 ‘성인’이라는 표찰을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성인도 우리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 가는 성인과 평범한 사람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재화를 나눌 때나 선행을 할 때에, 평범한 사람은 앞과 뒤를 충분히 재고 나서 ‘아니오’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성인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예’ 하고 대답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늘에 쌓은 제물
    
    
    

  2. guest 님의 말: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저의 마음을 들켰기때문이지요
    당신께서는 저의 마음과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시는데
    당신께 들킬까 보물처럼 감추고 꽁꽁 동여매고 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저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니 신앙생활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못된 습관등…..
    참 어렵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말씀하시는데 무엇을 더 숨기고 움켜지고 있는지…
    당신께 모두 고백하고 당신께 의지하면 좋을텐데……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 보물처럼 움켜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으면 좋을텐데….
    어렵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생각하면서도
    실천을 하는 것이 쉽지 읺음에 아직도 신앙인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에 우울합니다
    모두다 내려놓으면 좋을텐데 ㅠㅠ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말씀을 깊이 새기며
    보물처럼 움켜지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하나 하나 차근차근 시작이 반이라고 했지요?
    시작해보겠습니다 “반”은 한 셈이지요? 주님!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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