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연중 제13주간 수요일(7/01)


    말씀의 초대
    독서 말씀으로 이번 달 초반에는 창세기가, 후반에는 탈출기가 이어진다. 오늘 독서에서 사라에게 쫓겨난 하가르는 아기가 죽어 가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그 아기를 돌보시어 하가르가 우물을 발견하게 하신다. 하느님의 약속은 이사악을 통해 이루어지겠지만,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이다(제1독서). 가다라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본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신다(복음).
    제1독서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5.8-20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야고보 사도는 마귀들도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무서워 떤다고 강조하면서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는데(야고 2,17 참조), 오늘 복음의 마귀들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이 마귀들은 남들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자기들을 쫓아내실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만 구원하고는 아주 멀고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마귀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그 돼지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점은 마귀들의 파멸을 뜻합니다.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었습니다. 물 또한 때로는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혼돈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여하튼 오늘 복음의 마귀들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라는 마귀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자기들을 위하여 자기들과 함께 계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 오히려 자기들을 방해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과 함께 있기보다 부정한 돼지 떼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하느님을 뵙고도 구원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궁금한 점이 남아 있습니다. 이 상황을 목격하고 예수님께 자기들의 고장에서 떠나가 달라고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도 혹시나 내 소유인 돼지를 잃지 않으려고 예수님께서 제발 멀리 가 주시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나를 이끄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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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3주간 수요일(7/01)


      말씀의 초대
      독서 말씀으로 이번 달 초반에는 창세기가, 후반에는 탈출기가 이어진다. 오늘 독서에서 사라에게 쫓겨난 하가르는 아기가 죽어 가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그 아기를 돌보시어 하가르가 우물을 발견하게 하신다. 하느님의 약속은 이사악을 통해 이루어지겠지만,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이다(제1독서). 가다라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본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신다(복음).
      제1독서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5.8-20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야고보 사도는 마귀들도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무서워 떤다고 강조하면서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는데(야고 2,17 참조), 오늘 복음의 마귀들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이 마귀들은 남들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자기들을 쫓아내실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만 구원하고는 아주 멀고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마귀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그 돼지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점은 마귀들의 파멸을 뜻합니다.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었습니다. 물 또한 때로는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혼돈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여하튼 오늘 복음의 마귀들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라는 마귀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자기들을 위하여 자기들과 함께 계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 오히려 자기들을 방해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과 함께 있기보다 부정한 돼지 떼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하느님을 뵙고도 구원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궁금한 점이 남아 있습니다. 이 상황을 목격하고 예수님께 자기들의 고장에서 떠나가 달라고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도 혹시나 내 소유인 돼지를 잃지 않으려고 예수님께서 제발 멀리 가 주시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나를 이끄시는 주님  
    
    
    

  2. guest 님의 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귀만도 못한 저의 믿음이 부끄러웠습니다
    마귀들도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보는데...
    신앙생활을 몇 십년 했어도...
    복음말씀 묵상을 몇 년씩 했어도...
    봉사자 교육을 받고 봉사활동을 했어도...

    무엇을 했는지...
    기도는 제대로 했는지...
    봉사는 제대로 했는지...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는지...
    복음말씀묵상을 제대로 했다면...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고 지치고 좌절했을까?
    당신을 원망하며 당신의 자녀들과 갈등을 했을까?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했지만
    복음묵상을 하는사람은  취미생활이나 세속과 타협하지
    않으며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모두가 겉치례였음을 느낍니다
    복음묵상 역시도 저를 내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서...

    어떻게?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며 행동으로 실천하는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아니!
    저의 마음을 들킨 것같아 부끄럽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데...
    자랑하고 싶고 자신을 인정받고 싶고  내세우고 싶고...
    세속적인 저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을리 만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이 취미생활도 아닌데...
    복음묵상이 타자연습도 아닌데...
    말씀 안에서 생활하며 기쁨을 찾고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참고 이겨나가는 모습이 신앙인의 자세인 것을...
    그렇다고 신앙생활이나 복음묵상이나 봉사나 기도생활이나
    어느 것하나 똑 뿌러지게 잘한 것도 없으면서
    세속의 욕심과 자만과 교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마귀만도 못한 저의 믿음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새로 영세한 초신자의 마음으로 신앙생활도 복음묵상도
    해야겠다고 다짐또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의 자녀답게...
    복음묵상을 하는 사람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복음묵상을 할때만이 하는 다짐이 아닌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해야겠다고..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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