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22)


    1900년 무렵부터 마리아께 ‘여왕’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다. 1925년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해지면서 이러한 요청은 더욱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고 해마다 5월 31일에 그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그 뒤 로마 전례력의 개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연결시키고자 성모 승천 대축일 뒤로 옮겼으며, 축일 이름도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로 바꾸었다. 이날 교회는 성모 승천의 영광을 거듭 확인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신 것을 기린다.
    말씀의 초대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곳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즈의 밭이었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즈는 룻의 요청대로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준다. 그 집안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말은 듣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므로, 스스로 스승이나 아버지로 자신을 내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낮추며 섬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셨다.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 룻기의 말씀입니다. 2,1-3.8-11; 4,13-17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 가문으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였다.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들로 나가,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래 가거라, 내 딸아.”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룻은 들로 나가 수확꾼들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보아즈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들어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갈 것 없다. 여기에서 멀리 가지 말고 내 여종들 곁에 있어라. 수확하는 밭에서 눈을 떼지 말고 있다가 여종들 뒤를 따라가거라. 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였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 있는 데로 가서 종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셔라.” 그러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방인인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보아즈가 대답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당시 지도층에 속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질타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위선자’라는 그리스 말에는 가면을 쓴 연극배우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위선자는 하느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는 자기 자신 앞에서도 연극하는 것처럼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앞의 말씀은 우리가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자위하면서 누군가를 비난할 때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든 사회적 또는 종교적으로든 권위를 지닌 사람들 아래 있는 이들이 자주 되뇌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한 구절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권위마저 잃게 되지요. 그래서 말만 번드럽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경우,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옳은 말을 한다면, 그가 그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처럼 살아가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쉐마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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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22)


      1900년 무렵부터 마리아께 ‘여왕’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다. 1925년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해지면서 이러한 요청은 더욱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고 해마다 5월 31일에 그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그 뒤 로마 전례력의 개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연결시키고자 성모 승천 대축일 뒤로 옮겼으며, 축일 이름도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로 바꾸었다. 이날 교회는 성모 승천의 영광을 거듭 확인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신 것을 기린다.
      말씀의 초대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곳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즈의 밭이었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즈는 룻의 요청대로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준다. 그 집안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말은 듣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므로, 스스로 스승이나 아버지로 자신을 내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낮추며 섬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셨다.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 룻기의 말씀입니다. 2,1-3.8-11; 4,13-17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 가문으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였다.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들로 나가,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래 가거라, 내 딸아.”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룻은 들로 나가 수확꾼들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보아즈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들어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갈 것 없다. 여기에서 멀리 가지 말고 내 여종들 곁에 있어라. 수확하는 밭에서 눈을 떼지 말고 있다가 여종들 뒤를 따라가거라. 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였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 있는 데로 가서 종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셔라.” 그러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방인인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보아즈가 대답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당시 지도층에 속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질타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위선자’라는 그리스 말에는 가면을 쓴 연극배우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위선자는 하느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는 자기 자신 앞에서도 연극하는 것처럼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앞의 말씀은 우리가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자위하면서 누군가를 비난할 때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든 사회적 또는 종교적으로든 권위를 지닌 사람들 아래 있는 이들이 자주 되뇌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한 구절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권위마저 잃게 되지요. 그래서 말만 번드럽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경우,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옳은 말을 한다면, 그가 그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처럼 살아가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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