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연중 제25주간 목요일(9/24)


    말씀의 초대
    키루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성전 재건을 미룬다. 저마다 자신의 삶에 몰두하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성전 재건을 촉구하신다. 성전을 짓기 시작하면 그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되돌아올 것이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당황한다. 자기가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으므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 한다(복음).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을 두고 어떤 이들은 종말에 다시 오리라고 믿던 엘리야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지만, 헤로데는 여러 가지 소문 가운데서도 유독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는 말에 신경을 씁니다. 그만큼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헤로데는 요한이 바른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죽일 때에도 몹시 괴로워하면서(마르 6,26 참조) 마지못해 목을 베었습니다. 죽이고 나서도 헤로데는 요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여,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그가 되살아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헤로데는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6,16) 하고 되뇝니다. 이보다는 조금 누그러져 있지만 루카 복음은 헤로데가 예수님에게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면서도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실제로 예수님을 찾아 나설 용기가 없었습니다. 헤로데의 모습과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한 세례자 요한, 빌라도의 처신과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라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물으면서도(요한 18,38 참조) 진리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그들은 도저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웠던 것은 세례자 요한이었고 예수님이셨습니다. 어쩌면 헤로데가 호기심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였는지 모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헤로데도 빌라도도 호기심에서 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호기심만으로 예수님이나 진리를 진정으로 만날 수 없다는 점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은 호기심의 대상이 결코 아니시며, 그분을 만나 뵈려면 자캐오처럼 남다른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진리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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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5주간 목요일(9/24)


      말씀의 초대
      키루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성전 재건을 미룬다. 저마다 자신의 삶에 몰두하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성전 재건을 촉구하신다. 성전을 짓기 시작하면 그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되돌아올 것이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당황한다. 자기가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으므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 한다(복음).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을 두고 어떤 이들은 종말에 다시 오리라고 믿던 엘리야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지만, 헤로데는 여러 가지 소문 가운데서도 유독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는 말에 신경을 씁니다. 그만큼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헤로데는 요한이 바른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죽일 때에도 몹시 괴로워하면서(마르 6,26 참조) 마지못해 목을 베었습니다. 죽이고 나서도 헤로데는 요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여,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그가 되살아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헤로데는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6,16) 하고 되뇝니다. 이보다는 조금 누그러져 있지만 루카 복음은 헤로데가 예수님에게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면서도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실제로 예수님을 찾아 나설 용기가 없었습니다. 헤로데의 모습과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한 세례자 요한, 빌라도의 처신과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라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물으면서도(요한 18,38 참조) 진리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그들은 도저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웠던 것은 세례자 요한이었고 예수님이셨습니다. 어쩌면 헤로데가 호기심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였는지 모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헤로데도 빌라도도 호기심에서 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호기심만으로 예수님이나 진리를 진정으로 만날 수 없다는 점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은 호기심의 대상이 결코 아니시며, 그분을 만나 뵈려면 자캐오처럼 남다른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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