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그릇된 가르침으로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들을
경계하라고 권고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을 요약한다. 이를 증언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이 믿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나병 환자를 치유하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신다.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신
예수님께서는, 그가 깨끗하게 되어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다(복음).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16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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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후 금요일(1/08)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그릇된 가르침으로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들을 경계하라고 권고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을 요약한다. 이를 증언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이 믿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나병 환자를 치유하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신다.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신 예수님께서는, 그가 깨끗하게 되어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다(복음).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16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만한 높이의 믿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정말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온몸이 나병에 걸린 환자라면 어떤 방법으로도 깨끗하게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난여름 메르스로 많은 사람이 철저하게 격리되어 생활을 해야 하던 때, 성경의 나병 환자들이 특별히 생각났습니다. 메르스 환자들은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음압 병실에 격리되어, 가족의 위로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장례마저도 가족이 정상적으로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에서 떨어져 살아야만 했고 길을 가면서도 “나는 불결한 사람이요!” 하고 다른 이들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자신이 환자라고 외치면서 다녀야 했던 나병 환자들의 고통은, 상처 때문에 오는 아픔보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추방된 소외의 고통을 감내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메르스의 경우처럼, 사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래서 수치심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환자가, 예수님께서 자기를 고쳐 주실 수 있다고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그분의 뜻에 내맡깁니다. 다른 어느 병자처럼 “하실 수 있으면”이라고 의심을 달지도 않고, 예수님을 유혹하던 악마처럼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토를 달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저의 병을 고쳐 주셔야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자기 믿음에 조건을 붙이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자기를 고쳐 주셨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주님이심을 굳게 믿으면서, 자신의 고통을 자애로우신 주님의 뜻에 맡기며 의탁합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의 믿음에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믿음을 보면서 그저 감탄만 할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