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1)


    말씀의 초대
    사순 시기 전까지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묵상한다.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에서 왕정이 수립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무엘의 탄생에 대하여 전하는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이가 없어 괴로움을 겪던 여인이었다(제1독서). 연중 시기를 맞이하여 마르코 복음을 처음부터 묵상한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시고 당신을 따를 첫 제자들을 부르신다(복음).
    제1독서
    <프닌나는 주님께서 태를 닫아 놓으신 한나를 괴롭혔다.> ▥ 사무엘기 상권의 시작입니다. 1,1-8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연중 시기를 시작하는 첫날, 회개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새삼스럽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다른 복음서들보다 간략한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첫 말씀이지만,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삼스럽습니다.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에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에게만 회개하라고 하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매달린 이들에게도, 당신의 첫 제자로 나선 어부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한결같이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회개 없이 복음을 믿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마르 1,1), 그분께서 오심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마르 1,15 참조)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려면, 우선 이 ‘회개’라는 그리스 말 어휘의 뜻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메타노이아’), 다음으로 ‘회개’를 나타내는 히브리말 표현대로 하느님께 돌아서야 합니다(‘슈브’). 곧 ‘뒤집힘’이, ‘전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부들은 그물과 아버지와 삯꾼들과 배를 모두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분명 하느님 나라가 일정한 거리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말씀하신 지도 벌써 이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나라가 아주 멀리 있다면,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이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을 당시 그들은 어부였기에, 당연히 그물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조건을 내거시면서 그들을 부르시지 않았고,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도 어떠한 요구가 없었습니다. 그저 ‘예.’ 또는 ‘아니요.’라는 대답만이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갈릴래아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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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1)


      말씀의 초대
      사순 시기 전까지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묵상한다.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에서 왕정이 수립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무엘의 탄생에 대하여 전하는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이가 없어 괴로움을 겪던 여인이었다(제1독서). 연중 시기를 맞이하여 마르코 복음을 처음부터 묵상한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시고 당신을 따를 첫 제자들을 부르신다(복음).
      제1독서
      <프닌나는 주님께서 태를 닫아 놓으신 한나를 괴롭혔다.> ▥ 사무엘기 상권의 시작입니다. 1,1-8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연중 시기를 시작하는 첫날, 회개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새삼스럽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다른 복음서들보다 간략한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첫 말씀이지만,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삼스럽습니다.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에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에게만 회개하라고 하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매달린 이들에게도, 당신의 첫 제자로 나선 어부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한결같이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회개 없이 복음을 믿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마르 1,1), 그분께서 오심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마르 1,15 참조)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려면, 우선 이 ‘회개’라는 그리스 말 어휘의 뜻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메타노이아’), 다음으로 ‘회개’를 나타내는 히브리말 표현대로 하느님께 돌아서야 합니다(‘슈브’). 곧 ‘뒤집힘’이, ‘전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부들은 그물과 아버지와 삯꾼들과 배를 모두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분명 하느님 나라가 일정한 거리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말씀하신 지도 벌써 이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나라가 아주 멀리 있다면,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이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을 당시 그들은 어부였기에, 당연히 그물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조건을 내거시면서 그들을 부르시지 않았고,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도 어떠한 요구가 없었습니다. 그저 ‘예.’ 또는 ‘아니요.’라는 대답만이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갈릴래아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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