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연중 제6주간 토요일(2/18)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고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며, 아벨과 에녹과 노아를 보기로 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시어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깨닫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7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4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 덕분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 덕분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5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에 따라 받는 의로움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3 그때에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11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 ‘본다는 것’은 내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으면 내 눈앞에 나타나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본 것이 전부이고, 내가 보지 않은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편견과 오해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걸리는 덫이고,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편협한 사람들이 빠지는 늪입니다. 편향된 시각을 지닌 매스미디어, 곧,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자기가 보고 싶은 세상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편견의 늪에 빠져 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몇몇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여 주십니다. 세상에 그 어떤 눈으로도 볼 수 없는 놀라운 환시입니다. 거룩함의 매혹은 베드로가 초막을 지어 그곳에 머물고 싶다는 엉뚱한 청을 하게 만듭니다. 사실 엉뚱하다기보다는, 그 놀라운 감동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솔직한 표현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이 영광을 보려면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활 이후에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가 보는 것도 전부가 아님을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는 길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은 탐욕과 불신에 빠지면 볼 수 없는 세상 너머의 다른 세상을 보는 마음의 능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눈을 감을 때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가끔은 세상을 향하던 눈을 감아 보십시오. 보지 못했던 믿음의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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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고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며, 아벨과 에녹과 노아를 보기로 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시어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깨닫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7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4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 덕분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 덕분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5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에 따라 받는 의로움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3 그때에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11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 ‘본다는 것’은 내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으면 내 눈앞에 나타나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본 것이 전부이고, 내가 보지 않은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편견과 오해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걸리는 덫이고,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편협한 사람들이 빠지는 늪입니다. 편향된 시각을 지닌 매스미디어, 곧,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자기가 보고 싶은 세상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편견의 늪에 빠져 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몇몇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여 주십니다. 세상에 그 어떤 눈으로도 볼 수 없는 놀라운 환시입니다. 거룩함의 매혹은 베드로가 초막을 지어 그곳에 머물고 싶다는 엉뚱한 청을 하게 만듭니다. 사실 엉뚱하다기보다는, 그 놀라운 감동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솔직한 표현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이 영광을 보려면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활 이후에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가 보는 것도 전부가 아님을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는 길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은 탐욕과 불신에 빠지면 볼 수 없는 세상 너머의 다른 세상을 보는 마음의 능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눈을 감을 때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가끔은 세상을 향하던 눈을 감아 보십시오. 보지 못했던 믿음의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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