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연중 제23주일(9/10)


    ▦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과 영을 부어 주시어, 우리가 모든 율법의 핵심인 사랑의 계명에 충실하며, 형제들의 올바른 삶에 관심을 갖도록 기도합시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으므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그를 타이르라고 하시며,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네가 악인에게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3,7-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9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내 것을 다 주고도 못 준 것이 없는지 둘러보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율법이 내가 지닌 소유와 집착, 이기심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야 하는 의무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라면,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의 정신을 완성한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가르칩니다. 사랑은 자비와 선의로 채워지지만, 그렇다고 악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불의와 거짓 앞에서 사랑은 침묵하고 인내하기에 앞서 올바른 관계를 세우기 위한 정의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웃과의 사랑을 관계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가르치십니다. 죄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에 그를 꾸짖는 행위도 사랑에 속합니다. 혹시라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상대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기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은 다른 두세 사람의 증인 앞에서 진실을 고백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기만과 편견에 빠진 사람까지 끌어안으라고 예수님께서는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행위가 자칫 불의를 용인하고, 거짓을 인내하는 위선적인 사랑으로 변질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는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고 강조합니다. 무뎌진 마음으로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악에 맞서 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거짓과 위선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사회적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악의 연대가 강해 보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의 영의 연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우리의 예언자 직무를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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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3주일(9/10)


      ▦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과 영을 부어 주시어, 우리가 모든 율법의 핵심인 사랑의 계명에 충실하며, 형제들의 올바른 삶에 관심을 갖도록 기도합시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으므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그를 타이르라고 하시며,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네가 악인에게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3,7-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9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내 것을 다 주고도 못 준 것이 없는지 둘러보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율법이 내가 지닌 소유와 집착, 이기심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야 하는 의무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라면,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의 정신을 완성한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가르칩니다. 사랑은 자비와 선의로 채워지지만, 그렇다고 악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불의와 거짓 앞에서 사랑은 침묵하고 인내하기에 앞서 올바른 관계를 세우기 위한 정의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웃과의 사랑을 관계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가르치십니다. 죄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에 그를 꾸짖는 행위도 사랑에 속합니다. 혹시라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상대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기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은 다른 두세 사람의 증인 앞에서 진실을 고백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기만과 편견에 빠진 사람까지 끌어안으라고 예수님께서는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행위가 자칫 불의를 용인하고, 거짓을 인내하는 위선적인 사랑으로 변질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는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고 강조합니다. 무뎌진 마음으로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악에 맞서 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거짓과 위선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사회적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악의 연대가 강해 보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의 영의 연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우리의 예언자 직무를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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