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집을
지으라는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린다(제1독서).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여,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며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다(복음).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1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4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5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6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7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의 불안은,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양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진리를 외면하는 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대변해 줍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비행을 지적했던 세례자 요한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걸림돌로 생각했으면서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 앞에서 공언한 허세를 이용해 세례자 요한을 처형합니다.
헤로데는 진리 앞에서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을 감추려고 했지만,
예수님의 등장은 그에게 또 다른 걸림돌이 되어
불안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에서 ‘죄’는 단순히 윤리적인 악행이나
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 무질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죄의 본질은 나의 삶의 바탕이자 근거인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께서 선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모든 악행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라고
가르치신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나의 행위와 생각들이 세상의 논리와 관점에서 정당화되고,
사람들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합리화의 유혹에 빠질 때,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계명은 나에게 걸림돌이고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진리에 눈을 감을 때 죄의 유혹과 불안감이
내 삶을 지배한다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헤로데에게 예수님은 불편한 진리였습니다.
나를 숙명처럼 지배하고 있는 죄의 근원들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비록 내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부유함의 안락을 누린다 하더라도,
내 영혼의 참된 평화와 안식은 없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가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교회가 주는 것은,
하느님과 맺는 관계가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여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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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목요일(9/28)
말씀의 초대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집을 지으라는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린다(제1독서).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여,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며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한다(복음).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1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4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5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6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7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의 불안은,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양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진리를 외면하는 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대변해 줍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비행을 지적했던 세례자 요한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걸림돌로 생각했으면서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 앞에서 공언한 허세를 이용해 세례자 요한을 처형합니다. 헤로데는 진리 앞에서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을 감추려고 했지만, 예수님의 등장은 그에게 또 다른 걸림돌이 되어 불안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에서 ‘죄’는 단순히 윤리적인 악행이나 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 무질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죄의 본질은 나의 삶의 바탕이자 근거인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께서 선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모든 악행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라고 가르치신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나의 행위와 생각들이 세상의 논리와 관점에서 정당화되고, 사람들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합리화의 유혹에 빠질 때,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계명은 나에게 걸림돌이고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진리에 눈을 감을 때 죄의 유혹과 불안감이 내 삶을 지배한다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헤로데에게 예수님은 불편한 진리였습니다. 나를 숙명처럼 지배하고 있는 죄의 근원들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비록 내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부유함의 안락을 누린다 하더라도, 내 영혼의 참된 평화와 안식은 없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가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교회가 주는 것은, 하느님과 맺는 관계가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여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