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자녀는 그분을 뵙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자신을 순결하게 하려고 애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어린양은 구약 시대부터 더듬어 보아야 할,
꽤나 무겁고 중요한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탈출 12장 참조), 어린양의 피로 하느님께 ‘생명’을 보증받았습니다.
피가 생명일 수 있는 것은, 어린양의 희생 덕분이었고, 그 희생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는 여정의 어려움에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어린양의 희생은 이사야서 53장에서도 나타납니다.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종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에 빗대어 묘사됩니다.
죽어 가면서도 침묵하는 그 침묵은, 다른 이의 죄를 대신
짊어진 주님의 종의 희생을 상징하는 격조 있는 표현입니다.
요한은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어린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을 살리는 어린양의 겸손과 희생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자, 예수님의 삶 자체였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이러한 희생을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낮은 자리에 먼저 찾아드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사랑입니다.
더불어 살기에는 너무 심한 경쟁에 내몰린 오늘, 우리의 세상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사랑임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어린양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에 묵묵히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걸어오시는데, 우리는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 | | | | | | | | | |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1/3)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자녀는 그분을 뵙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자신을 순결하게 하려고 애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어린양은 구약 시대부터 더듬어 보아야 할, 꽤나 무겁고 중요한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탈출 12장 참조), 어린양의 피로 하느님께 ‘생명’을 보증받았습니다. 피가 생명일 수 있는 것은, 어린양의 희생 덕분이었고, 그 희생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는 여정의 어려움에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어린양의 희생은 이사야서 53장에서도 나타납니다.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종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에 빗대어 묘사됩니다. 죽어 가면서도 침묵하는 그 침묵은, 다른 이의 죄를 대신 짊어진 주님의 종의 희생을 상징하는 격조 있는 표현입니다. 요한은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어린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을 살리는 어린양의 겸손과 희생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자, 예수님의 삶 자체였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이러한 희생을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낮은 자리에 먼저 찾아드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사랑입니다. 더불어 살기에는 너무 심한 경쟁에 내몰린 오늘, 우리의 세상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사랑임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어린양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에 묵묵히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걸어오시는데, 우리는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