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부활 제4주간 목요일(5/07)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파견과 사명 수행은 당신의 파견과 사명 수행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유다 사회는 예수님을 주인은커녕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유다 사회가 메시아를 믿지 않은 것도 아니고, 메시아에 대하여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자렛 촌놈 예수는 아니다.’라는 완고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당신의 운명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그 운명이라는 것이 어이없게도 제자의 배신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자 길을 나선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팔아넘긴다는 기막힌 이야기가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대개 우리는 이원론적 신앙관에 익숙합니다. 선한 것은 악한 것과 결코 섞일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제 눈에 싫은 것을 악하다며 어깃장을 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눈에 악하고 더럽고 모자란 것을 통하여 오늘도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어설픈 정의감과 설익은 지식으로, 약하고 부족하며 때로는 죄스럽고 비참한 사람들의 주님을, 그리고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함부로 단죄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 단죄가 오늘 또다시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바로 그 제자의 민낯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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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4주간 목요일(5/07)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파견과 사명 수행은 당신의 파견과 사명 수행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유다 사회는 예수님을 주인은커녕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유다 사회가 메시아를 믿지 않은 것도 아니고, 메시아에 대하여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자렛 촌놈 예수는 아니다.’라는 완고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당신의 운명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그 운명이라는 것이 어이없게도 제자의 배신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자 길을 나선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팔아넘긴다는 기막힌 이야기가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대개 우리는 이원론적 신앙관에 익숙합니다. 선한 것은 악한 것과 결코 섞일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제 눈에 싫은 것을 악하다며 어깃장을 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눈에 악하고 더럽고 모자란 것을 통하여 오늘도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어설픈 정의감과 설익은 지식으로, 약하고 부족하며 때로는 죄스럽고 비참한 사람들의 주님을, 그리고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함부로 단죄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 단죄가 오늘 또다시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바로 그 제자의 민낯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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