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연중 제12주일(6/21)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을 맡겨 전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어, 우리가 결코 믿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악인들의 손에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건지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10-13 예레미야가 말하였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2-15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6-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을 26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성 마태오의 순교”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마태오 가 병사들의 손에 순교를 당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두 가지 장면이 대비를 이룹니다. 한 장면에서는 포악한 병사가 마태오를 죽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천사가 월계수를 마태오에게 건네고자 구름을 타고 내려옵니다. 한 그림 안에 두 개의 전혀 다른 장면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비참한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을 그린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신앙에 의하여 승리의 월계수가 주어지는 기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이라면, 다른 하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장면 가운데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하겠습니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비극적 죽음이 전부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압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치 씨앗이 땅에서 썩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씨앗이 죽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싹이 텄다.”라고 말하듯이, 비극적인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승리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11,1).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 속에서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많고,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드러내는 믿음에 기뻐하고 계심을 기억합시다.(한재호 루카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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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2주일(6/21)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을 맡겨 전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어, 우리가 결코 믿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악인들의 손에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건지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10-13 예레미야가 말하였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2-15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6-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을 26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성 마태오의 순교”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마태오 가 병사들의 손에 순교를 당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두 가지 장면이 대비를 이룹니다. 한 장면에서는 포악한 병사가 마태오를 죽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천사가 월계수를 마태오에게 건네고자 구름을 타고 내려옵니다. 한 그림 안에 두 개의 전혀 다른 장면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비참한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을 그린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신앙에 의하여 승리의 월계수가 주어지는 기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이라면, 다른 하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장면 가운데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하겠습니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비극적 죽음이 전부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압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치 씨앗이 땅에서 썩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씨앗이 죽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싹이 텄다.”라고 말하듯이, 비극적인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승리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11,1).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 속에서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많고,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드러내는 믿음에 기뻐하고 계심을 기억합시다.(한재호 루카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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