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9/30)


    예로니모 성인은 340년 무렵 크로아티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깊이 공부한 뒤 정부 관리로도 일했으나,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사제가 된 그는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하였다.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 성경』이 그것이다. 또한 성경 주해서를 비롯하여 많은 신학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선종한 예로니모 성인은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욥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며 누가 그분과 겨루겠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시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 욥기의 말씀입니다. 9,1-12.14-16 욥이 친구들의 1 말을 받았다. 2 “물론 나도 그런 줄은 알고 있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3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4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하리오?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을 옮기시고 분노하시어 그것들을 뒤엎으시는 분. 6 땅을 바닥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 7 해에게 솟지 말라 명령하시고 별들을 봉해 버리시는 분. 8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 9 큰곰자리와 오리온자리, 묘성과 남녘의 별자리들을 만드신 분. 10 측량할 수 없는 위업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 11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 12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 14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께 답변할 수 있으며 그분께 대꾸할 말을 고를 수 있겠나? 15 내가 의롭다 하여도 답변할 말이 없어 내 고소인에게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네. 16 내가 불러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해도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리라고는 믿지 않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잠시도 마음 편히 쉬실 곳이 없으셨습니다. 안타깝지요, 우리의 주님께서 쉬실 곳이 없으시다니요. 그런데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쉬실 곳이 없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장례도, 가족에게 작별 인사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단호함을 만납니다. 어디에 얽매여 있어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먼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겠다. 그 어디에도 나만의 쉼터와 공간을 마련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복음을 논하고 묵상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이미 알고 있는 신학이나 주석학 지식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다 읽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기존의 지식으로 복음의 의미를 판단합니다. 오늘 복음을 듣고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려면 다 버려야 해!’라고 속으로 수없이 외쳤겠지요. 그러나 저는 다르게 보입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알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기존의 지식과 삶의 방식에서 해방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기존에 즐기고 아끼던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버림으로써 아까운 마음이 든다는 것은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떠날 때 기존의 삶이 아쉬운 것은,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제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자유인이셨습니다. 저도, 우리도 자유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숨 한번 크게 들이켜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얼른 빠져나와 하느님 나라로 멋지게 여행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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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9/30)


      예로니모 성인은 340년 무렵 크로아티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깊이 공부한 뒤 정부 관리로도 일했으나,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사제가 된 그는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하였다.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 성경』이 그것이다. 또한 성경 주해서를 비롯하여 많은 신학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선종한 예로니모 성인은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욥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며 누가 그분과 겨루겠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시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 욥기의 말씀입니다. 9,1-12.14-16 욥이 친구들의 1 말을 받았다. 2 “물론 나도 그런 줄은 알고 있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3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4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하리오?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을 옮기시고 분노하시어 그것들을 뒤엎으시는 분. 6 땅을 바닥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 7 해에게 솟지 말라 명령하시고 별들을 봉해 버리시는 분. 8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 9 큰곰자리와 오리온자리, 묘성과 남녘의 별자리들을 만드신 분. 10 측량할 수 없는 위업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 11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 12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 14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께 답변할 수 있으며 그분께 대꾸할 말을 고를 수 있겠나? 15 내가 의롭다 하여도 답변할 말이 없어 내 고소인에게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네. 16 내가 불러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해도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리라고는 믿지 않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잠시도 마음 편히 쉬실 곳이 없으셨습니다. 안타깝지요, 우리의 주님께서 쉬실 곳이 없으시다니요. 그런데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쉬실 곳이 없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장례도, 가족에게 작별 인사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단호함을 만납니다. 어디에 얽매여 있어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먼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겠다. 그 어디에도 나만의 쉼터와 공간을 마련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복음을 논하고 묵상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이미 알고 있는 신학이나 주석학 지식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다 읽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기존의 지식으로 복음의 의미를 판단합니다. 오늘 복음을 듣고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려면 다 버려야 해!’라고 속으로 수없이 외쳤겠지요. 그러나 저는 다르게 보입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알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기존의 지식과 삶의 방식에서 해방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기존에 즐기고 아끼던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버림으로써 아까운 마음이 든다는 것은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떠날 때 기존의 삶이 아쉬운 것은,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제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자유인이셨습니다. 저도, 우리도 자유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숨 한번 크게 들이켜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얼른 빠져나와 하느님 나라로 멋지게 여행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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