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수난기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기


재판소에서 총독관저 마당으로 나온 예수에게 네 명의 옥졸이 터진 살에 늘러 붙은 붉은 누더기를 벗기고 갖은 모욕을 퍼부으면서 천한 옷을 입혔습니다.


가시관도 머리에 씌워졌습니다. 이는 민중의 욕설과 조롱거리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옥사장들은 예수를 더욱 흉악한 죄인으로 보이기 위하여 십자가형의 선고를 받은 다른 두 도적을 감옥에서 끌어내어 예수와 함께 처형하기로 하였습니다. 수형자는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형장까지 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십자가는 두 개의 나무로 십자형을 만든 것으로 세로는 약 10척이오, 가로는 세로의 3분의 2가 되는 길이였습니다. 많은 피를 흘렸고 피로와 고통으로 기진맥진한 예수, 특히 지독한 태형을 받은 예수로서는 이 십자가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모욕의 상징으로서 노예, 죄의 낙인을 찍힌 자, 도적, 살인, 화폐위조 등 중죄인의 처형에 사용하는 형구인데, 이것을 예수의 어깨에 지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다만 사랑으로써 이 치욕의 십자가를 받아 지셨습니다. 예수의 어깨에 짊어진 이 십자가는 모든 나무 중에 가장 귀중한 나무였습니다. 세상을 구속한 나무요, 가장 찬란한 승리의 트로피요, 왕중왕의 지팡이인 것입니다.




행렬의 출발을 재촉하는 나팔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수형자는 옥졸에게 끌려 무수한 민중의 틈을 헤치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무수한 민중은 미친 사람 같이 그 행렬을 맞이하였습니다. 특히 자관을 쓴 왕 메시아를 가리키면서 들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선두에 선 앞잡이가 연도에서 구경하는 관중에게 수형자의 이름과 죄상을 주지시키면서 걸어갑니다. 다음에는 질서를 유지하고 행렬의 통로를 열어주기 위하여 로마병이 들어섰습니다.




그 뒤에는 대인과 아이들까지 밧줄, 사다리, 못, 장도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붙일 명패 등을 가지고 따라갑니다. 그들의 뒤에도 도적이 서로 예수님께서 맨발로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넘어질 때 같이 비틀거리면서 겨우 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땀과 피에 젖은 몸이,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참으면서 한 손으로는 십자가를 붙들고, 또 한 손으로는 긴 외투자락을 걷어올리면서 너무도 힘겨워하시며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더러워진 머리털은 흩어져 얼굴을 덮고 펄럭거렸으며, 피가 말라붙은 얼굴과 수염은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졸들은 예수의 허리띠에 매어놓은 오랏줄을 잡아당기어 빨리 가기를 재촉하며 걸음을 빨리 하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무고한 어린 양 같이 아무 말도 없이 저들의 극악무도한 학대를 참아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처투성이가 된 얼굴에는 사랑과 인내의 숭고한 표현을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의 주위에는 그 맹수 같은 적, 즉 백부장, 백성의 장로, 또 여러 번 예수께 논박과 꾸지람을 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제는 원수 갚을 때가 왔다고 싱글벙글 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랐습니다. 저들은 서로 바꾸어 가면서 예수께 가까이하여 욕설을 퍼부으며 예수의 예언과 기적을 조소하였습니다. 맨 뒤에는 말을 탄 백부장이 지휘하는 병졸 일대가 아침부터 유혈 구경을 하려고 형장으로 몰려가는 무수한 노예, 노동자, 무뢰한들을 단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노상에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은 발을 멈추고 예수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옥졸들은 예수께 폭행을 하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중풍환자를 걸어다니게 한 자가 자기는 일어서지도 못하는구나 하면서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병졸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에프라임의 이 큰길을 진행하였을 때 가슴이 저린 정경이 전개되었습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정의 눈물을 금할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부인 예수의 모친이 두어 명의 친구와 함께 예수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만나 최후의 작별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는 예수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고통의 시간이었으리라. 병졸들과 못, 장도리 같은 것을 가진 자의 뒤에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두 도적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요? 검푸른 얼굴에 핏줄이 보이는 두 분, 파랗게 일그러진 입, 이 모양을 보는 순간 성모는 두 손을 벌리고 예수께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병졸들은 억센 손으로 성모를 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주 걸음을 멈추며 마리아께 눈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애정에 넘치는 그 눈은 모친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모친 마리아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게 되자 동반한 부인들이 부축하여 떠메고 가는 정도이었으니 이 모자 두 분의 애끓는 장면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행렬은 에프라임 거리를 지나 골고타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예수는 이 험한 길로 들어서자 얼굴은 죽은 듯 검푸르고, 기진맥진하여 아무리 힘을 써도 십자가를 메고 갈 수가 없이 되어 그만 엎드려졌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가 중로에서 죽으면 십자가에서의 죽는 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백부장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사람을 찾던 중 그 때 마침 농장에서 돌아오는 시몬을 붙들어 강제로 예수와 협력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그 때 시몬은 문득 기진맥진하여 거의 죽게 된 예수가 자기의 협조를 애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그는 십자가의 중간을 들고 그 무게가 아무쪼록 예수께 적게 눌리도록 노력하였으니 예수는 이 애덕의 행위를 결코 잊지 않았으리라…




양쪽에 큰 가옥들이 늘어서 있는 넓은 길을 지날 때 주민들은 냉담한 얼굴로 혹은 경멸하는 태도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돌연 훌륭한 옷차림을 한 부인이 길에 뛰어나와 길을 막는 병졸을 밀치고 예수 앞에 다가가 그 변형된 얼굴을, 피와 침과 먼지와 땀으로 덮인 그 얼굴을 보다 못해 자기의 손수건으로 씻었습니다.


예수는 눈으로 그 부인의 호의를 감사하고 걸음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집으로 돌아가 그 수건을 보니 구세주의 창백하고도 슬픈 얼굴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혀 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그 애덕의 여걸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이의 이름을 베로니카라 불렀습니다.




소위 ‘처형의 문’, 이 문은 골고타형장으로 통과하는 문이라 하여 이름지어 ‘처형의 문’이라 하는 것입니다. 길에는 암석이 많아서 더욱 올라가기가 어려운 길입니다. 시몬의 조력이 있었지만 예수는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또다시 엎디어졌습니다. 간신히 일어나 문 가까이 왔을 때 그 문 위에는 예수의 사형선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구세주가 그 문을 지날 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보기 싫은 것을 읽어보라고 강박하였습니다.




골고타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 두어 명의 부인이 예수를 보고 주위환경을 꺼리지 않고 목을 놓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의 어떤 부인은 아기를 안고 있었으며 그 아기도 어머니를 따라 같이 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배은망덕한 예루살렘 위에 내려질 재난을 생각하고 불쌍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애통하는 부인들을 동정하여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부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손들을 위하여 울라”고… 이미 기력이 핍진한 예수는 골고타 산꼭대기에 이르기 전에 또 한번 노상 암석 위에 엎디어졌습니다. 악당들은 거의 기절한 예수를 일으켜 끌고 잡아당기고 해서 드디어 형장에 도착했습니다.




골고타는 ‘해골의 땅’이란 뜻으로 전설에 의하면 이 명칭은 한 중대한 기념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지은 이름이라 합니다. 즉 예수보다 수 천년 전에 한 남자(아담)가 고통을 참다못해 이 쓸쓸한 산꼭대기에서 숨졌습니다.


아담이 낙원에서 쫓겨나 9세기 동안 고생과 눈물의 날을 보냈습니다. 아담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매일 먹을 것을 장만하여야만 했고, 병고를 참아 견디고, 고행을 하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귀향살이 하는 아담은 한번도 실망하지 않고 낙원에서 추방당할 때도 신이 그와 그 자손을 구원하리라고 예언하신 것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언제든지 자손들에게 장래에 오실 구세주를 희망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박두한 아담은 신의 정의를 흠숭한 후 자기의 자손들을 사탄의 포학에서 구하고 죄로 인하여 닫힌 하늘의 문을 자기와 자손들을 위하여 다시 열어줄 것을 구세주께 간구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아담의 아들들은 그 시체를 산 중턱에, 그리고 그 꼭대기에 있는 바위동굴에는 그의 머리를 묻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이 바위를 골고타, 즉 인조의 ‘해골이 쉬는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옥졸들이 새 아담인 예수를 끌고 올라간 곳은 역시 같은 바위(골고타)였습니다. 이 바위 위에서 속죄주의 피는 인류가 부패시킨 원조의 재와 섞여지기 위해, 교만과 쾌락의 나무 지선악수가 인류를 멸망시켰으므로 능욕과 고통의 나무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골고타 산꼭대기에 올라간 것입니다. 전 인류의 죄를 구속할 신의 아들 어린양은 자원하여 이 산에 오른 것입니다.




이때 사방에서 몰려온 군중은 사형수의 최후의 고통을 보고자 하여 산꼭대기를 둘러쌌습니다. 그 날 6시가 가까웠습니다. 이 시각이야말로 모든 시각 중에 가장 적막한 시각입니다. 성모와 천사와 인간들이 함께 오열하는 위대한 비극입니다. 신이요, 인간인 그리스도의 비극은 바야흐로 종말을 고하려 하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다 함께 통회 보속하여 예수님께 가까이 가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우리도 골고타의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인생행로를 힘차게 올라갑시다. 그 마지막 끝에는 하느님이 서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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