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오늘 미사가다가 맨홀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말씀이 생각나서 아래를 보니까 빠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허허
혹시 미사갔다오다 신자들이 바다는 멀고 맨홀은 가깝고 하니 빠질까봐 맨홀 뚜껑을 닫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남을 죄짓게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망가지고 남도 망가지니 나 하나면 참으면…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로 뛰어들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남을 죄짓게 안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예전에 고3때 주일날 저는 새벽 미사를 보고 놀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성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왈
지금 성당가서 뭐하니. 다 끝날텐데
나랑 놀러 가자…
그 친구는 나랑 놀러갔습니다.
지금 그 친구 냉담중입니다……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 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한테 충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수님께서는 모르십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받아들이지를 안하는데 어떻게 충고를 하겠습니까?
그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단지 그의 말은
왜 행위의 결과만을 보고 나를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운수회사에서 그는 교회의 집사였다고 하는데 부품을 빼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왈
네 눈에는 이것이 나쁘게 보일수도 있으나(당연히 나쁜짓이지)
하느님 보시는 눈에는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 그래도 충고해 주어야 합니까?
그의 구원을 위해서, 그의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하지만 어렵습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말겠습니다.
저도 그런데 남에게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미국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몇백년은 되었다고 합니다.
태풍에도 끄덕 없던 나무가 어느날 말라서 죽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나무속을 작은 벌레들이 갉아먹어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큰 나무가 작은 벌레들에 의해…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라는 이 말씀도
그런것이 아닌가?
내 안의 작은 벌레들. 불신의 작은 벌래들, 악행의 작은 벌래들, 남을 죄짓게 하는 작은 벌레들이 결국 나를 쓰러뜨리고 남도 쓰러뜨린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하루 묵상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