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독서를 위한 자료

│ 26 또한 노아의 시대에 벌어진 것처럼 인자의 날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곤 했는데 홍수가 닥쳐 모두 멸망시켰습니다.
│ 28 또한 롯의 시대에 벌어진 것처럼 다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고 팔며 심고 집짓곤 했는데,
│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모두 멸망시켰습니다.
│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의 은신처(골로사이3,3)를 떠나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마지막 구속과 심판이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이때이다. 사람은 아들은 심판관이다.
그 아들의 내림은 곧 행복의 약속이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위협이다. 그런데 아직 그분의 내림에 대한 아무런 징조도 없으며, 우리는 기다려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께서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리나는 것과 다가올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그분이 판결에 좌우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물과 불
구원사의 두 사건, 노아 시대와 롯 시대의 사람들의 운명이(창세기6,11-13;18,20 이하) 사태의 중대성을 강조한다. 이 재난들은 불과 물에 의해 일어났다. 그런데 이 두 요소는 인간들이 세우는 토대의 유약함을 강조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빨리 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에 이 두가지는 신적 심판의 상징들로 사용된다.


│ 31 그 날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세간이 집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오지 마시오. 또한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사람은 뒤로 되돌아서지 마시오.
│ 32 여러분은 롯의 아내를 기억하시오.
│ 33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오히려 잃는 사람은 살릴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분께서 심판하러 오실때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단 한가지 중요한 것 바로 주님이시다.
세간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명예도 아니고…
현세적 삶이 주는 향락을 버리는것이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유일한 길이라면 기꺼이 버릴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참된 삶과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뒤돌아보기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느님께서는 롯의 가족에게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았기에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다.
뒤돌아본다는 것.
따름에 가장 장애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34 여러분에게 일러 둡니다.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대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다른 이는 버려 둘 것입니다.
│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다른 이는 버려 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과월절 날 밤에 오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분이 오시는 그 밤은 심판을 초래한다. 이 심판은 의인들을 악인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일로 시작된다.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그렇게 나누신다는 것이다. 의인들은 하느님께 바쳐질 것이며(1데살로니카 4,16-17), 반면에 나머지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에 버려질 것이다(마태오13,48).

무엇이 판결을 결정하는가?
두 남자와 두 여자 중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삶은 먹거나 맷돌가는 데 완전히 빠져 있고 다른 두 남녀의 삶은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심판은 예수님께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분의 말씀에 대한 복종. 얼마나 그분 생각하면서 살아가느냐….하는.


│ 36 그들이 대답하여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 하고 예수께 여쭈자, 그분은 “(죽은) 몸이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언제인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
사람들은 그 날이 언제 올 것이냐고 예수님께 묻는다.


썩은 고기가 독수리를 끌어들이듯이 죄인들은 자신의 머리에 떨어질 심판을 불러들인다.
중요한 것은 심판이 어디서 일어날 것인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와 회개의 문제이다.
즉 예수님께서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가르치셨을 때에 그 가르침은 회개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다스림을 선포하셨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의 재림은 단죄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즉 종말은 희망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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