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주님공현후 월요일 -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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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곳에 기록된 복음말씀이, 성서와 매일미사 책과 왜 약간씩 다른부분이 있는지 운영자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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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이스라엘 땅의 지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성서를 읽으면서 늘 가장 안타깝습니다.
내가 어떠한 곳의 여행을 다녀와서 알고나서 이야기를 듣는것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곳의 얘기만 듣는것은 비교할 바도 전혀 못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속의 지명은 꼭 그 존재하는 지명만의 의미가 분명 아님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구약에서 이미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언급됩니다.
그 지역은..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곳 가파르나움에 가서 사셨고 그곳에 빛이 비치리라는 말씀도 계십니다.
그러나

빛이 모두에게 비치는 것이 아님을 묵상하여 봅니다.

감사하게도 마태오복음사가는 어떤이들에게 빛이 비치는지를 덧붙여 말씀해 주십니다.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마음과 성체로 그분의 人性, 神性 을 다 모셔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근성을 그분앞에 버리지 않는다면
주시는 빛을 받을 수 없고,
예수님의 고귀한 빛은 내 안에서서 빛을 바랄수가 없는 것입니다.

온 시대를 통털어 어느누가 과연 .. ”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라고 외칠수 있었던가를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은 과연 메시아가 아닐수 없고 그 분의 말씀과 가르침은 그야말로
“어떤 쌍날칼보다 날카롭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놓는..( 히브리,4 12-15) 힘이 있습니다.

회개..

회개는 내 자신을 하느님앞에 항구함과 겸손으로
아무것도 아닌, 그저 미약한 죄인임을 고백하는것이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또
회개하지 않는 이웃을 보면 금새 눈이 따가워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로인해 나의 겸손함이 받는 피해가 억울해 지고 힘겨워집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기엔, 회개하지 않고 교만해보이는 이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으로 하는것이 아님을…
은총의 힘으로 하는것임을 알아야 겠지요.
내가 이웃의 회개를 판단함이 아니라
나는 오로지,
하느님앞에 나의 회개만을 들고 걸어나가야 함을 늘 잊지말아야 할것입니다.
때로는 과민하고 지나친 회개로 자신을 학대하고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딸로 부르시는 것이지
부려먹는 종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그러한 어리석음 또한 경계되어야 할 부분이겠지요.

같은 아버지.. 같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아들 딸의 길이 바로…
나의 사랑과 겸손으로 고백하는 회개의 길임을 알려주신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오늘도…
미처 다 고백하지 못한 죄를 하느님께 올립니다.
나의 몸과 마음이 주님의 빛을 잘 받아 담을 수 있도록
이웃의 상처와 시련의 고통에 쪼개개고 금가지 않을
견고하고 단단한 질그릇이 될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이 늘 저와 함께 하여 달라고 말입니다.
언젠가는…
나의 중풍…
나의 간질병의 상처와
남아있는 딱지들이 다시 떼어져 덧나지 않고…
모두 다 깨끗이 아물어
갓태어난 아이와도 같은 사랑스러운 솜털같은 몸으로
그분의 하늘나라를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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