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구박하는가?

10 장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33 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
34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 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37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39 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40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와서 서로 “요한은 기적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그가 이 사람에 관해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고 하면서
42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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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님을 구박하는가?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유다인들의 이런 반응은 예수님께 대한 불신을 가리키고,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으로만 몰아세웠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라는 말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그들의 의도와 적개심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도한다.


    3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보다는 유다인들로 하여금 좀더 깊이 생각하도록 이끄는 데 역점이 있다. 특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많은 일들이 좋은 일들로 강조되고, 아버지로부터  위임된 일들로 평가됨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깊은 친교를 나누고 계시다는 것이 증언된다.


    33 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오히려 비난하고 신성모독죄로 몰아세운다. 이리하여 예수님께 대한 유다인들의 불신이 더욱 확고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유다인들의 이런 비난은 복음서가 씌어질 당시에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치열하게 벌어진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다인들의 격렬한 비난과 논박이 당시 유다인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34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 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하느님은 율법을 당신 말씀으로 받아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신들”이라고 칭했다는 뜻이다. 시편 82,6에서 판관들을 “신들”이라고 칭한다. 하느님을 대표하는 사람을 “신”이라 칭하는사례를 구약성서의 다른 대목에서도 볼 수 있다(출애 4,16;7,1; 시편 45,7; 즈가12,8 참조).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신들로 칭해진다면, 하느님으로부터 당신 말씀, 곧 당신 계시의 전달자로서 파견된 예수님이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파견되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는 분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신들”로 칭해진 자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신성모독을 하지 않고서도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칭할 수 있다는 뜻이다.

     

    37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일들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이고, 그 일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분이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만이라도 진지하게 보고서 믿음을 가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9 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다시금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얼마나 많이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배척을 받으셨던가? 얼마나 많이…

    하지만 아직은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40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와서 서로 “요한은 기적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그가 이 사람에 관해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고 하면서
    42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2. user#0 님의 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리시며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더라도 당신께서 하시는 일들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레자 요한은 예수님을 사람들앞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임을 증거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 자체를 믿지않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설득력이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때 그 상황 자체를 보고 해결하려 하지않고 그 뒤에있는 배경이나 조건등을보고 섣불리 판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아무리 오묘하다 하더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기에는 믿음이 부족한것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떤사람은 사제나수도자,교우들 때문에 성당에 안나간다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사람들을 볼 때 하느님을 믿는 것인지 어떤 특정인을 믿는 것인지 답답할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신앙을 신부님이나수녀님,교우들땜에 믿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믿는 것인데 말입니다.

    신앙의 초점을 내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데 두지않고 어떤 특정인 때문에 나의 영혼이 죽는것을 생각해볼문제입니다.

    참 답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아직도 때가 되지않아 그런 사람들한테 알려지지 않았나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하느님을 믿습니다.”하는 굳은마음으로 해야하겠습니다.

     

     

     

     

  3. user#0 님의 말:

    예수님과 하느님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또

    예수님께서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직도 하느님에 대해 뜬구름 잡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체험하게 해 주십니다.

    저는 어제(3/21.목) 저희 본당인 정림동 성당에서 ‘회개와 찬양의 삶’이란

    주제로 부부 가수인 고영민(안드레아), 손현희(소화데레사)씨가 오셔서

    자신들의 신앙의 체험을 발표하고 성가도 곁들여 해 주셔서 좋은 특강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예전에는 유명한 가수였었는데,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부와 명예를

    버리고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복음성가 가수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신앙 안에서 조그만 일에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그분만을

    믿고 따르며 의지하면서 사시는 그분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저희를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고,  믿는 사람들은 누구를 

    통해서든지 당신을 체험하게 해 주신다는 것도 더불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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