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마침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그 날 예루살렘에서 육십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날: 문맥상 빈 무덤을 발견하고 확인한 주일이다.
한 스타디온: 약 185미터, 육십 스타디온: 약 11킬로미터.
어떤 사본(시나이사본)에는 백육십 스타디온이라고 나와 있다.
여러 후보지가 있지만 엠마오가 어딘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부활을 보낸 성직자 수도자 성당 가족들이 엠마오를 찾아서 여기 저기를 헤매고 있나?…농담인것 아시죠?
14 그들은 (그 동안의) 모든 사건에 관해서 서로 이야기했다.
두 사람: 이들은 열 두 제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엠마오 마을에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과월절을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다가 부활하신 그날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다.
15 그들이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 친히 다가오시어 그들과 동행하시게 되었다.
이들은 신앙인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어찌보면 교회는 여행중에 있는 교회이며, 예수님꼐서는 그 교회와 함께 여행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든 생각들이,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들의 토론이 모두예수님을 화재로 삼고 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는가? 아니 오히려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막고서 등을 돌리지는 않는가?
16 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부활이야기의 일관된 특징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져서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함께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오늘의 우리 모습과 너무도 유사하다.
우리는 그분을 찾아서,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정작 옆에 계신 분이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다.
침통한 표정: 그들의 슬픈 표정은 그들을 짖누르던 절망을, 그리고 그들의 넋잃은 슬픔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것은 성금요일 사건 이후로 제자들이 갖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8 그리고 (그 중의) 하나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대답하여 “당신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는데 당신만이 이 며칠 동안에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몰랐단 말입니까?” 하고 그분에게 말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무슨 일입니까?” 하시자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의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넘친 예언자였습니다.
20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 대제관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주어 사형 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달아) 처형했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 끝에 이런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넋을 잃게 했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무덤에 갔다가
23 예수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을 보았는데 이들이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가운데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더니 과연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들이 가지고 온 메시지를 드었다. 그들 또한 빈 무덤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는 못했다. 듣기는 하였지만 믿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무엇을 봐야만이 내가 주님을 믿을 것인가? 이들처럼 꼭 부활하신 주님을 뵈어야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그저 들음만으로 충분할 수는 없는 것인가?
25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참, 아둔하구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굼뜬 사람들 같으니.
마음이 닫혀 있으니 주님을 알아 뵐 수가 없었고, 마음이 닫혀 있었기에 예언자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인간이 부뢀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우선 그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 내 마음이 닫혀 있으니 주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내 마음이 닫혀 있으니 열심한 신자들이나 사제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이 닫혀 있으니…
…
열쇠 팔아요…..
26 그리스도는 이런 고난을 겪고 자기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27 그리고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척하자
29 그들이 말리며 “이미 날도 저물어 저녁이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뭅시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머물려고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청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 머무실 것입니다. 교회와 함께 머무실 것입니다. 성찬례 안에서 함께 머무실 것이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는 것은 성찬의 가장 값진 결실로 묘사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주님께서는 청을 뿌리치지 않으십니다. 나와 함께 머물러 달라고 청해봅시다. 성찬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나되려고 노력해 봅시다..
30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식탁에) 자리잡으시자 빵을 드시고 찬양하신 다음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실 때에도, 최후만찬 때에도 그렇게 하셨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만찬례를 거핼할 때도 역시 그렇게 했다. 우리는 이 모습을 성찬례 안에서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 그 집 가장의 역할을 맡겨 드린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떼어서 나누워 주신다. 이것이 바로 성찬례이다. 미사 중 성찬례때 사제는 그 기도를 마친다.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엠마오의 제자들의 이야기는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다. 성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지만, 성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형상으로 현존케 한다. 성찬은 주님의 부활의 가장 큰 표징, 그것으로써 우리가 주님이 살아 계시고 현존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러한 표징이다. 성찬은 단순히 주님의 죽으심만의 기념이 아니라 또한 그분의 부활아심의 기념이기도 하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리어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서 사라지셨다.
함께 있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빵을 떼어 주시고 나니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되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한국의 태극전사들이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 요즘 우리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쁜 것이 있었다. 바로 이 제자들에게는.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뵈었던 것이다. 아하! 예수님이셨구나…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죄송했을까요?
……………………….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삶 안에서 내가 너무 바쁘니 남을 배려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로지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이고, 자신의 일이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도 바쁘지만 남을 위해서도 열심히 도와줬다. 자신의 것을 내어 주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리석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와! 저 사람 굉장한데…”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는데, 그 사람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중요한 것들을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32 이에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해 주셨을 때에 [우리 안에서]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하였다.
33 그들이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보니 열한 (제자)와 그 동료들이 모여
34 “정말 주님은 부활하여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또한 빵을 떼어 주실 때에 어떻게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는지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돌아갔습니다. 즉시 돌아갔습니다. 가서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제자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