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과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생명은 사람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는다. 이 새로운 생명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써 얻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의 효과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의 원천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원천인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졌음을 믿음으로써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으로 파견하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신자는 지금 여기에서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에서 만물과 만사가 그 종말을 고하게 될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생명이 지금 현존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에 눈물이 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하시는것일까요?
당신의 아들까지도 내어주시는 것일까요? 내가 뭔데…
17 사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둘 수 있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죄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 단죄는 심판과 유죄 판결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목적은 구원하는 것이지만, 그분의 도래는 심판을 가져온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빛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를 단죄하게 된다.
18 그를 믿는 이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외아들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래의 말씀에 눈을 돌려본다면 마음만이 아니라 행동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9 그 심판은 이러합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행실이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20 사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모두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행실이 폭로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21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자기 행실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행하는 사람들, 사람이 되신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빛을향하여 나오며, 빛을 받아 백일하에 알려지게 됩니다. 갈림길에 서서,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부르심을 듣고 응답하는 인간 존재는 자유롭게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yes or no
그러나 그 책임은 항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마음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따라간다는 것은, 나아간다는 것은, 행실이라는 것은 그 마음이 동하여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택입니다. 물건을 사고 싶은데 돈을 내지 않으면 물건을 사지 못합니다…
믿음은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사랑의 눈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