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동의합니다.
내가 주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전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주교님의 말씀이십니다. 파견받은 이는 자기 뜻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파견하신 분의 말씀을 해야 합니다.
어느날 주교님께서 한 모임에 다녀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내 신자인데 잘 돌봐 달라고 맡겼더니 이상하게 만들어놨어. 내 신자인데…”
내 신자라는 말씀을 하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교님께서 교구민들을 당신의 신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마 신자들도 그 말씀을 들었다면 주교님을 더 많이 사랑해 드릴 것입니다.
사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 사제는 주교님을 대신해서 사목일선에 파견을 받습니다. 그 사제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않고 주교님의 뜻을 교구민들에게 전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신자들의 성화를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또한 신자들은 한 사제를 대하는 것을 주교님을 대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결론도 나옵니다. 우리 본당의 신부님은…하면서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과 주교님의 교구민에 대한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또한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받은 사람들이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많은 이들이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형제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사람들이니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느님을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좋은 세상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무딘 마음 앞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은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수도 있습니다.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여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서 성해지면 어쩌겠느냐?”(이사야6,10)
사람의 죄는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경찰이 신호를 위반하는 것과 평범한 붕어빵 장사를 하시는 분이 길을 건너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둘다 신호를 위반했지만 경찰은 거리의 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신분이기에 신호를 어겨서는 더욱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붕어빵 리어커를 끌고 계신 아저씨도 건널목을 건너야 합니다. 하지만 리어카는 무겁고 건널목은 멀리 있으니 그렇게 가까운 길로 위험을 무릎쓰고 건너는 것입니다. 둘다 잘못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경찰의 행위가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지도자인 그들의 행위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있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은 오히려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잘못을 기워갚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단죄하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어둠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빛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둠속에 있는 이들을 단죄하러오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물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해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는 않습니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를 심판할 분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말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지만 결국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예수님도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내 이름으로 보잘것 없는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 잘해드리는 것이고, 주변사람들을 잘 해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잘 해드린 것이되며, 결국 하느님께 선행을 쌓게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