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여러분이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립보는 말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필립보, 이렇게 오랫동안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었는데 당신은 나를 모른다는 말입니까?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필립보는 순간 당황했을 것입니다. 더 이상의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씨…예수님! 예수님의 모습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느님이 보고 싶은걸 어떻게 해요? 제 얼굴 보시면 제 아버지 얼굴 보이시잖아요….저는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만 하느님을 직접 뵙고 싶단 말이예요….”
예전에 참 멋진 분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의 부모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분이시길래 저렇게 아름답게, 저렇게 좋은 모습으로 키워 놓으셨을까…. 그 부모님을 뵈니까 그 답이 나왔습니다. 정말 멋진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불신이라는 것.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면 우르르 달려갑니다. 저기서 성모님 발현하셨다고 하면 우르르…. 아마도 믿기는 하지만 확실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그러는 듯 합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왕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었는데 신하가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와서 다급하게 소근거렸습니다.
“임금님! 저 아랫동네 성당에서 예수님께서 발현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가느라고 난리입니다…어서 가시지요..”
“쉿 조용히 하게. 저 앞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가? 나는 저 밀떡속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그 믿음 하나 만으로도 족하네…”
…
믿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 눈으로 꼭 확인해야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요즘 머리카락을 팔만분의 일로 쪼개는 기술이 인기입니다. 그런데 팔만분의 일이 눈으로 보입니까? 보이지 않으니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특수한 기계를 사용해서 그것을 보는 것처럼 나의 신앙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인정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내 (말)을 믿으시오. 그렇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으시오.”
이제 눈으로 무엇을 찾는 일은 그만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의 발자국을 찾아 봅시다.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