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잉~신부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될것입니다.”
신분님! 슬픔이 어케 기쁨으로 바뀌겠어요..
저처럼 부족한 사람은요..
걍 슬픔이 살그머니 세월따라 없어지던데요..마음이 평화로와 짐을 느꼈습니다.
또한 힘들고 어렵던 일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고
수월하게 걍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약이겠지요… 뭐 그런거….
글구 슬픔이 뭣이냐..우리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슬픔이구요…짝은 슬픔은 남이야기 좋아하는 사람!
남이 잘되는 것, 배아파하는 사람! 남의 레지오팀 안되는 이야기하는것 좋아 사람
어제도 있었어요..또 낮은 자세로 봉사하지 않고 벼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머 저 이야기잖아요…주님! 용서해주세요…이제 예수님 슬프지 않게 할께요..
마음아프지도 않게 하려고 해도 잘 안되어요….도와주실 수 있으시죠..
주님! 사랑해요….신분님! 싸우랑해요…헬레나님! 사랑해요..마틸다은니 사랑해요.
레지나은니 사랑해요..예쁜 루피나님! 사랑해요..또 음 숨차라..모두덜 사우랑해요.
아기 이야기는 않할래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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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오래간만이예용 – 요한 ┼
여러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픈 것입니다. 슬퍼하면서 손을 놓지 못하는 이별의 장면은 차마 끝까지 볼 수 없는 애처로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나은 만남을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릅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헤어지면 또 만나는 것이 우리네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별”과 “재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별은 예정되어 있는 이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회도 예정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별의 슬픔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울며 통곡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슬퍼하겠지만 여러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울며 통곡을 하고 세상은 기뻐할까요? 그리고 우리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까요? 이별은 예수님의 죽음의 시간을 말하며,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제자들은 슬픔에 빠질 것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믿고서 따랐는데 나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스승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제자들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올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기뻐합니다. 자신들의 허물을 비추는 빛이 사라졌기 때문에…
하지만 제자들의 슬픔은 곧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시는 분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아이 낳는 고통을 모릅니다. 예수님도 아이는 낳아보지 않았으니 그 고통을 잘 모르실텐데… 그런데 예수님은 이별의 슬픔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하십니다. “여인이 해산할 즈음에는 슬픔에 잠기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아기를 낳으면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더 이상 진통을 회상하지 않습니다.”
어느 책에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인대가 조금만 늘어나도 통증이 얼마나 심한가. 뼈가 이이 머리가 나올만큼 10cm 정도 벌어진다면 그 통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아무리 이 세상 여자들이 모두 다 통과하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참을 만한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리고 왜 또 아이를 낳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되어 있습니다. “일단 아이를 낳은 후에는 그 이전에 가져보지 못한 감정 하나를 얻게 됩니다. 갓난 아이나 어린아이를 보면 주체할 수 없이 강하게 끌립니다. 엄청나게 자력이 센 초대형 자석에 척하고 달라붙는 것 같이…그냥 예쁜 게 아니라 ‘너어어어~~~~무’ 예쁩니다… 아이 낳기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지요.” 이건 아이를 낳은 여자 분의 진술인데 예수님께서 단순 명료하게 정확하게 표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지금은 슬픔에 잠겨 있지만, 내가 다시 여러분을 보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이 기뻐하게 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여러분에게서 빼앗지 못합니다. 그 날에는 여러분이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
산모가 체험했던 그것을 제자들도 체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그 기쁨은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서 누렸던 그런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로 세상에 대한 승리를 드러내실 것이고,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님과 함께 자유와 평화와 흘러넘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약속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이 내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은 제자들의 충만된 기쁨에 대한 약속에 직결됩니다. 제자들은 직접 아버지께 청할 수 있고, 기도 가운데 모든 어둠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쁨을 누리는 제자들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라는 말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속해 있음을 고려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와 일치된 행동을 언제나 하기 때문에 “예수를 대신해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기뻐하는데 신앙인인 내가 슬퍼해야 하는 것을 찾아 봅시다. 무엇이 슬픔입니까? 주일에 미사가는 것이 슬픔입니까? 쉬어야 하는데,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성당가는 것이 슬픔입니까? 평일미사 가는 것이 슬픔입니까? 레지오나 구역 반 모임, 직장모임에 가는 것이 슬픔입니까? 귀찮은데 기도하는 것이 슬픔입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남을 속여가면서 자기것을 열심히 챙기는데 나는 못 챙기고 못 속이니까 그것이 슬픔입니까?
“여러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거짓입니까? 그렇다면 어떤 기쁨으로 바뀌었는지 함께 이야기 해봅시다. 어떤 기쁨이 충만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