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망연자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 제자들은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은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토마는 그곳에 있지 않았었습니다.


토마가 돌아오자 제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지만 토마의 반응은 제자들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내가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눈으로)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한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문득 토마의 모습을 우리 공동체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형제님! 우리 함께 신앙생활 합니다.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우리 말씀나누기도 하고, 평일 미사에도 나갑시다.”


“열심히들 해보셔. 난 바빠서 못나가셔. 혹시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나를 끌고 가지 않는 이상 난 절대로 안 나갈거셔. 그리고 나 신앙 없어도 잘 살고 있으니까 나 방해하지 마셔. 놀기도 바빠서 시간 없으셔.(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 버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토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과 너무도 같은 상황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토마도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해들은 것을 받아들였고 믿었는데, 토마는 믿지 않고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토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전해준 것을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마가 생각하기에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마는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에게 종교는 그리 매력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귀찮게 하고 구속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에 앞서 토마 사도처럼 어떤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좋다. 나 예수님 믿겠다. 내가 믿을테니 예수님보고 나한테 나타나 주시라고 해라. 그렇게하면 믿겠다…”


사실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도 예수님께 의심과 불신을 드렸고, 표징이나 기적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토마가 믿던 믿지 않던 간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그런데 그런 토마에게 일대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평화!”


토마 사도는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또 다른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전의 불신이 그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아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토마의 부끄러운 마음, 불신의 마음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당신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살펴보시오. 그리고 당신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시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시오”


토마는 너무도 당황했습니다. 자기가 요구한 그대로 예수님께서 해 주시니…어찌보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언제라도 우리의 불신에 실제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꼭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아야만, 확인해야만 비로소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체 찬미가의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지만 다만 들음만으로 믿음든든”하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토마는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토마는 자기가 요구한 증거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뵙고 토마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제 토마는 부활한 예수님을 뵙게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보게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로써 주님이요, 하느님으로서 자신의 정체를 결정적으로 토마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나를 보고서야 믿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은 복됩니다!”


오로지 말씀으로만 믿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지 우리는 이 말씀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에 우리가 있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로부터 전해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지 예수님께서는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정녕 복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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