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는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해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서러워 말고, 큰사랑을 이루어, 한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간
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오늘은 한국의 초대신부이며, 초대성인이시며, 모든 한국사제들의 수호자이신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성덕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김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에서, 김해김씨 안경공파23대 손으로
부친 김제준(이냐시오)와 고 우술라를 모친으로 하여 탄생하셨습니다
천주교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집안에서 최초로 한국인 사제성소가
싹튼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김신부님의 집안은 원래 부유하고
지체높은 양반집안 이었지만 당시 조정의 천주교의 박해로 말미암아
천주교신앙 때문에 몰락한 집안 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사랑은
먼저 가정에서 싹트고 길러진다는 말이있듯이 그 뒤에 신심깊은
부모와 가정에서 그 신앙은 싹트고 있었습니다
이 신앙은 결실을 맺어 1836년에 모방 신부님으로부터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사제가 되기위한 수업을 받게되고, 1845년8월 17일에 상하이근처
김가항이라는곳에서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게됩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사제가 되기까지의 그의 노력과 결실에비해
너무도 짧은것 이었습니다 그는 객지에서 서품되어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을때 그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씨는 기해박해 때 정하상(바오로)등과
함께 순교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됩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에 잠겨있지않고
곧 서울과 용인 지방을 맡아 성사를 베풀며 교우들을 위로하고 신앙을
굳세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김신부님은 선교사 영입을 위해 새로운 통로를
개척하라는 주교님의 명을 받고 연평도외 백령도 부근에서 중국상선들과
연락을 취하다가 순위도에서 1846년 6월 5일에 관헌들에의해 체포됩니다
한편 관헌들은 김신부님을 심문하다가 그가 가진 해박한 지식과 어학실력에
감복되어 그를 살려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신부님은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출세가도의 모든길을 포기하고 순교를 선택하여
외국인과 교섭했다는 죄목으로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1846년 9월16일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시게 됩니다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짧은 생애동안 그리스도인의 완성의 경지인
성인의 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순교란 그리스도교 사랑에대한 최대의 증거행위입니다. 김신부님은
초대신자들의 신앙전통을 따라 순교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각하셨고
그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25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하느님께대한
사랑과 진리를 증거하기위해 바치신것입니다
한 주간동안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주님을 증거하기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봉헌한 성덕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