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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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함께 사는 수사님들과 강화도에 있는 보문사에 가서

부처님도 뵙고 뒷산에 올라 북조선땅(북녘 우리 땅)을

바라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부르고

기도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절간에는 처마 끝에 풍경이

매달려 있습니다. 제가 한 스님께 왜 풍경에 물고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잡니다. 풍경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깨어 정진하고 있는가?’ 다시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린답니다.”

스님의 말을 듣고 옳지, 나도 풍경을 사서 수도원 마당에

달아두어야지 싶어 두 개를 사서 수도원 큰문 앞과 뒤뜰

나무에 달아두었습니다. 그리고 풍경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사는가?’ 하고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두 달 시간이 지나자 본래의

뜻은 잊어버리고, 풍경이 울면 ‘아,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하고 스쳐지나고 맙니다.

회개(회두)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잘 알아듣고

받아들입니까?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하신

말씀이고,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하신 말씀이십니다. 구원의 조건은 회개와

믿음(세례성사)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얼마 전

명동성당에서 세례성사를 앞둔 예비신자들의 피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힘주어 말했던 것도 참된 회개의

삶이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사제들에게

날마다 회개(하느님과 화해, 이웃과 화해, 자신과 화해,

모든 피조물과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고린 5,’20)

오늘 하루도 회개하는 삶이었는지 되돌아봅시다.

흉터 없는 몸이 없는 것처럼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구원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죽음을 가져오는 큰 병이고, 회개는 새 삶을 잉태하는

좋은 약이고 치료입니다. 미사를 시작할 때,

저녁기도(수도자들은 끝기도)할 때 깊이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합시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박문식 신부(꼰벤뚜알 성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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