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과 가라지 그리고 나와 하느님

 



밀과 가라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농 부 한 사람이 낮에 밭에 나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원한이 있는 이웃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가 악의에 찬 계획을 꾸며 그 밤에 실행에 옮겨버립니다.


“주인님, 당신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디서 가라지가 생겼습니까?”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밀이 쑥쑥 자랄 때 그때서야 가라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 말씀 이렇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한 사람이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미사에도 참례하고 기도생활도 하고 좀더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믿지 않는 이가 그의 삶을 방해합니다.


“자네! 요즘 성당 다닌다면서?”


“응! 성당에 한번 다녀 보려고!”


“그래! 자네가 믿으려 하는 하느님은 뵈었나?”


“아직…”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하세.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는 술이 최고 아닌가?”


“…”


“역시 마음의 평화에는 술이 최고 아닌가? 어때! 성당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이렇게 술 한잔 하는 것이 좋은가?”


“…”


“자! 우리 술도 얼큰하게 취했으니 2차 가세 그려!”


“…”


“여보게! 내 돈 내고 술 먹고 내 돈 내고 2차 가는데 누구한테 피해 준 것이 있나? 마누라한테야 들키지만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둘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르는 일일세. 아무도…”


“……”





밀과 가라지


비유에 등장하는 종들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그러모을까요?’


하지만 주인의 대답은 예상 외입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뽑아) 그러모으다가 그것과 함께 밀까지 뽑아 버릴까 (염려된다).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러면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이르기를, 여러분은 먼저 가라지를 (뽑아) 그러모아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시오. 그러나 밀은 내 곳간에 모아들이시오, 하겠다.”


주인은 추수 전에 밀과 가라지를 판별하여 갈라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도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선과 악의 관계는 언제나 밀접한 관계이어서 조금만 마음을 돌리면 금방 죄로 빠져 버립니다. 믿는 다는 것도, 회개한다는 것도 순간의 믿음이나 회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속적인 믿음과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이가 순간의 사랑보다는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당신께로 향하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지켜보고 계십니다. 나의 의지를 존중하면서 내가 좋은 길로 들어서면 함께 기뻐하시고, 내가 좋지 않은 길로 들어설 때는 마음아파하십니다. 나에게 그 길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대부분 내가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오늘 농부처럼 억지로 돌려 놓지는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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