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떠날 준비를…”
홍광철 신부·태평동 보좌
처음 신학교에 입학할 때, 배낭 하나와 가방 두 개가 내 짐의 전부였다. 몇 년 후에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난 네가 며칠 살다가 신학교 나갈 사람인 줄 알았어.” 이불이라고는 담요 한 장밖에 없었고, 옷가지도 별로 없었기에 그렇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짐이 조금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그만 두려는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고, 가난하게 살려고 마음먹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 것 외에는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살다보니 한 가지씩 생기게 되고 자꾸 필요한 것들이 늘어만 갔다. 그래서 신학교 생활을 마칠 때는 트럭을 불러야할 정도로 짐이 많아졌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여행하는 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며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며,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마르6,8-9)”고 분부하셨다. 지팡이는 그 당시 여행자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데 거의 필수적인 것이었고, 신발은 거친 길을 걷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었기에,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하여 자신의 사명을 잊지 말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나를 본다면 “속옷은 두벌씩 껴입지 말라는 말씀” 외에는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 책꽂이에는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펴보지 않는 책들이 수두룩하고, 옷가지는 필요 이상으로 많으며, 그 외에도 없는 것 없이 다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것들은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그곳에서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 “인간적인 관계”와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함께 한 시간들이 많을수록 그만큼 친교는 깊어가고, 그 사람이 마음 속에 자리하는 공간이 크기에 헤어지기 싫고,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염려 때문인 듯 하다. 그러기에 떠난 후에도 그 본당에 미련을 두고 그곳 신자들과 연락하며 본당의 소식을 묻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무엇인가에 집착한다는 것은 고통인 듯 하다. 그것이 물질이든, 인간관계이든, 어떤 일이든 간에 그것에 집착한다면 결국 그것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인가에, 그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어렵겠지만 그것이 그분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의 자세이며, 고통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일도 태양은 반드시 솟아오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