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은 임금의 초대를 왜 무시했을까? 요즘 같으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초대하면 서로 가려고 하고, 초대 못 받아서 안달인데…왜 이들은 임금을 이렇게 무시하는 것일까?
2. 화가난 임금이 마을을 모조리 불태우는데 그 안에는 죄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무자비하게 벌을 하실까?
3.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불러 들였는데 왜 왕은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그를 벌할까? 그것도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속으로 쫓아 버릴까? 너무 무자비하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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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문을 제기합니다. – 요한 ┼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셔서 먼저 감사 드립니다. 자신과 하느님의
1. 사람들은 임금의 초대를 왜 무시했을까? 요즘 같으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초대하면 서로 가려고 하고, 초대 못 받아서 안달인데…왜 이들은 임금을 이렇게 무시하는 것일까?
초대 받은 이들은 임금님이 임금으로 보이지 않아 무시했을 것 같습니다. 외적인 자기 삶에 바빠 자기 자신의 진정한 행복에는 무관심 했겠지요? 아마 눈에 보이는 크나큰 이익이 주어졌다면 어찌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삶에는 관심 가질 여유가 없기에 임금님의 초대는 당연히 무시되었으리라 추정합니다.
2. 화가난 임금이 마을을 모조리 불태우는데 그 안에는 죄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불구하고 왜 무자비하게 벌을 하실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화가난 임금님은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마을을 불태우기 보다 상대에 대한 애절한 사랑으로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르치고 가르쳐도 알아 듣지 못하고 엉뚱한 짓만 하는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말입니다. 물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으나 보다 보다 못하시면 엄한 꾸중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예도 있으니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노아의 마을도 모두 휩쓸어 다시 재기 시키시는 모습에서 눈물 흘리시는 하느님께서는 정말 인간의 완성을 위해 애절한 노력으로 얼르고 달래고 꾸짖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모조리 불태우심은 은총으로 인식합니다. 왜냐구요? 교회의 성인성녀들을 보니 어느 정도 성덕에 이르면 우리 주 친히 나서셔서 그들의 묵은 자아와 애착들을 깡그리 비우게 하심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책을보니 영성세계에서는 한 영혼을 인도하실 때 어느 정도는 혼자 허우적거리도록 그대로 두었다 때가 이르면 아주 단호하게 대처하시는 주님의 강한 이끄심을 목격한니다. 사랑 안에 사랑이 되어 순수한 불꽃이 되도록 손 잡아 주시는 주님의 자비가 아닐까요? 아프지만, 못견디게 아프지만 감사하고 감사 할 일이겠지요. 정화의 은총이니 말입니다.
3.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불러 들였는데 왜 왕은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그를 벌할까? 그것도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속으로 쫓아 버릴까? 너무 무자비하신 것이 아닐까?
음, “밀이나 가라지나 그대로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이 다칠라. 마지막 날에 가려내면 되리라.” 안나가 착할 때나 악할 때나 심판하지 않으시고 초대하시는 임금님의 관대하심이여! 무엇도 묻지 않으시고 받아 안아 주시는 그대 나의 하느님이시여! 그대는 안나가 미워 내치지 않으셨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안나 자신이 그 어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단호히 깨우쳐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사랑으로 상처입은 가슴은 사랑으로 치유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지요? 사랑 안에는 사랑하는 이와 사랑 받는 이가 완전한 합일에 이르도록 부족함을 태워 없애는 아픔은 아픔이 아니라 님으로 인한 순열한 기쁨이 충만케된다 합니다. 고통이 기쁨이라는 말은 이런 것이겠지요? 사랑이 크면 고통도 크다 합니다. 그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으로 나를 사로잡아 사랑하는 이 안에 일치되는 사랑의 극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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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문을 제기합니다. – 요한 ┼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셔서 먼저 감사 드립니다. 자신과 하느님의
1. 사람들은 임금의 초대를 왜 무시했을까? 요즘 같으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초대하면 서로 가려고 하고, 초대 못 받아서 안달인데…왜 이들은 임금을 이렇게 무시하는 것일까?
초대 받은 이들은 임금님이 임금으로 보이지 않아 무시했을 것 같습니다. 외적인 자기 삶에 바빠 자기 자신의 진정한 행복에는 무관심 했겠지요? 아마 눈에 보이는 크나큰 이익이 주어졌다면 어찌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삶에는 관심 가질 여유가 없기에 임금님의 초대는 당연히 무시되었으리라 추정합니다.
2. 화가난 임금이 마을을 모조리 불태우는데 그 안에는 죄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불구하고 왜 무자비하게 벌을 하실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화가난 임금님은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마을을 불태우기 보다 상대에 대한 애절한 사랑으로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르치고 가르쳐도 알아 듣지 못하고 엉뚱한 짓만 하는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말입니다. 물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으나 보다 보다 못하시면 엄한 꾸중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예도 있으니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노아의 마을도 모두 휩쓸어 다시 재기 시키시는 모습에서 눈물 흘리시는 하느님께서는 정말 인간의 완성을 위해 애절한 노력으로 얼르고 달래고 꾸짖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모조리 불태우심은 은총으로 인식합니다. 왜냐구요? 교회의 성인성녀들을 보니 어느 정도 성덕에 이르면 우리 주 친히 나서셔서 그들의 묵은 자아와 애착들을 깡그리 비우게 하심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책을보니 영성세계에서는 한 영혼을 인도하실 때 어느 정도는 혼자 허우적거리도록 그대로 두었다 때가 이르면 아주 단호하게 대처하시는 주님의 강한 이끄심을 목격한니다. 사랑 안에 사랑이 되어 순수한 불꽃이 되도록 손 잡아 주시는 주님의 자비가 아닐까요? 아프지만, 못견디게 아프지만 감사하고 감사 할 일이겠지요. 정화의 은총이니 말입니다.
3.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불러 들였는데 왜 왕은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그를 벌할까? 그것도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속으로 쫓아 버릴까? 너무 무자비하신 것이 아닐까?
음, “밀이나 가라지나 그대로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이 다칠라. 마지막 날에 가려내면 되리라.” 안나가 착할 때나 악할 때나 심판하지 않으시고 초대하시는 임금님의 관대하심이여! 무엇도 묻지 않으시고 받아 안아 주시는 그대 나의 하느님이시여! 그대는 안나가 미워 내치지 않으셨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안나 자신이 그 어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단호히 깨우쳐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사랑으로 상처입은 가슴은 사랑으로 치유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지요? 사랑 안에는 사랑하는 이와 사랑 받는 이가 완전한 합일에 이르도록 부족함을 태워 없애는 아픔은 아픔이 아니라 님으로 인한 순열한 기쁨이 충만케된다 합니다. 고통이 기쁨이라는 말은 이런 것이겠지요? 사랑이 크면 고통도 크다 합니다. 그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으로 나를 사로잡아 사랑하는 이 안에 일치되는 사랑의 극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