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시니!”
홍광철 신부·
돌아보면 난 처음엔 하이얀 수건이었다. 주인집 아이는 세면 후 항상 나에게 입을 맞추고 자기 얼굴에 내 얼굴을 비벼주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내가 젖어서 떨고 있으면 하이얀 비누거품으로 나를 깨끗이 닦아주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젖은 몸을 말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하이얀 비누거품도 나의 몸을 예전처럼 하이얗고 부드럽게 해주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주인집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나의 얼굴에 자기 발을 씻었다. 그 후로 나는 화장실 문 앞에 자리하고 그 집 식구들의 발에 짓밟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가 나를 밟고 지나갈 때는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집 아주머니는 나의 얼굴로 더러운 방바닥을 비롯하여 먼지가 가득 덮여 있는 것들을 내 얼굴로 닦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젖어 있어야 했고, 더러운 물 속에 잠겨 있어야 했으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저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내가 가장 슬펐던 것은 결코 아이의 얼굴을 만져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이얀 비누거품에 담겨 있을 때 나는 내 몸을 다시 예전처럼 하이얗고 부드럽게 만들려고 애써 보았다. 그러나 시커먼 얼룩들과 뻣뻣함만이 남아 있을뿐이었다. 나는 처음엔 하이얀 수건이었다. 그러나 이젠 걸레가 되어 이곳 저곳을 닦으며 과거의 화려함을 기억해 볼뿐이다. 아무도 나를 수건으로 쓰려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걸레를 빨아서 수건으로 쓰는 사람은 없고 처음부터 깨끗한 수건을 걸레로 사용하는 사람도 없다. 너무도 더럽거나 헤진 것을 걸레로 사용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죄로 물들어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어도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 걸레를 아무리 빨아도 걸레지만 아무리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분의 손길은 다시 우리를 눈부신 모습으로 바꿔주신다. 회개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이라고 나와 있다. 즉 회개란 것은 “잘못된 길에서 방향 전환을 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돌아서면서 무엇이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행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냈다면 뉘우치고 가슴을 치면서 하느님께로 다시 향하는 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어떤 향기를 풍기며, 어떤 유혹을 받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더러움이 보이지 않듯이 성찰이 없는 삶 안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아갈 때 걸레와 같은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나설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걸레를 수건으로 쓰는 사람은 없다. 오직 하느님 외에는… 그러기에 우리는 행복하다. 비록 죄로 물들어서 더러운 걸레의 모습을 능가한다 할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를 버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께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