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들은 대부분 여기에 나오는 그 농부처럼 처신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그들에게 깊이 와 닿았을 것이다. 그 종은 그 농부가 일 년 동안 고용한 농사꾼이었다. 따라서 그 농부는 그 일꾼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그 종은 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보살필 뿐 아니라 집안을 돌보아야 했다. 그는 요리를 하고 식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 농부 자신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농부는 종에게 엄청난 요구를 한다. 그는 별것 아닌것처럼 시키지만 종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종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농부는 집에 있었다. 종이 지쳐서 돌아왔지만 농부는 식탁에 기대어 그에게 시중을 들라고 시킨다. 이것을 상상해 보시라. 내가 종이되어서 별것도 아닌 농부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장면을. 보잘것 없는 사람이 보잘것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을… 종은 하루 일을 마친 후라서 배가 고팠겠지만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자기 종에게 한 마디 감사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권리만을 행사한다. 종은 종일 따름이며 농부가 명령한 대로 해야 한다. …………………….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이 비유는 무자비한 농부와 불쌍한 종과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하여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 비유는 단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만을 묘사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시중은 종의 시중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계약의 한 형태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할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와 같은 생각을 모조리 배격하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의무도, 감사를 해야 할 빚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내세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보답을 바라면 안된다. 베드로 사도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마태19,27)라고 묻는 것처럼 보답을 바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우리가 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마치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에서 모든이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는 주인의 마음처럼… 그럼으로 우리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1고린9.16)
그럼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하물며 해 드린것이 별로 없는 나는 하느님께 요구할 것이 뭐가 있을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들은 대부분 여기에 나오는 그 농부처럼 처신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그들에게 깊이 와 닿았을 것이다. 그 종은 그 농부가 일 년 동안 고용한 농사꾼이었다. 따라서 그 농부는 그 일꾼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그 종은 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보살필 뿐 아니라 집안을 돌보아야 했다. 그는 요리를 하고 식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 농부 자신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농부는 종에게 엄청난 요구를 한다. 그는 별것 아닌것처럼 시키지만 종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종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농부는 집에 있었다. 종이 지쳐서 돌아왔지만 농부는 식탁에 기대어 그에게 시중을 들라고 시킨다. 이것을 상상해 보시라. 내가 종이되어서 별것도 아닌 농부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장면을. 보잘것 없는 사람이 보잘것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을… 종은 하루 일을 마친 후라서 배가 고팠겠지만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자기 종에게 한 마디 감사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권리만을 행사한다. 종은 종일 따름이며 농부가 명령한 대로 해야 한다. …………………….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이 비유는 무자비한 농부와 불쌍한 종과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하여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 비유는 단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만을 묘사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시중은 종의 시중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계약의 한 형태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할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와 같은 생각을 모조리 배격하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의무도, 감사를 해야 할 빚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내세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보답을 바라면 안된다. 베드로 사도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마태19,27)라고 묻는 것처럼 보답을 바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우리가 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마치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에서 모든이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는 주인의 마음처럼… 그럼으로 우리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1고린9.16)
그럼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하물며 해 드린것이 별로 없는 나는 하느님께 요구할 것이 뭐가 있을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난 종 안할래요. 뭐 그래요. 일을 시켰으면 미안한 마음도 있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그래야지 이 농부는 경영마인드가 없는 사람 같습니다. 뭐 저렇게 살면 누가 일하러 오겠습니까? 나 이런 종 하기 싫어요. 오히려 좀 착한 농부 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물론 내가 해야할 일은 하지요.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을 시킨 사람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더 힘이나서 일을 하겠지요. 소리만 지르는데 누가 일하겠습니까? 난 안해요 할 수 있어도 안할꺼예요 물론 일을 시키면 당연히 해야지요. 하지만…
보상은 조금밖에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수고했다는 것. 좀 쉬면서 하라는 것. 뭐 이런정도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난 종 안할래요. 뭐 그래요. 일을 시켰으면 미안한 마음도 있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그래야지 이 농부는 경영마인드가 없는 사람 같습니다. 뭐 저렇게 살면 누가 일하러 오겠습니까? 나 이런 종 하기 싫어요. 오히려 좀 착한 농부 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물론 내가 해야할 일은 하지요.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을 시킨 사람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더 힘이나서 일을 하겠지요. 소리만 지르는데 누가 일하겠습니까? 난 안해요 할 수 있어도 안할꺼예요 물론 일을 시키면 당연히 해야지요. 하지만…
보상은 조금밖에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수고했다는 것. 좀 쉬면서 하라는 것. 뭐 이런정도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주님! 전 참으로 많이 불평하면서 살아갑니다. 내 맘 몰라준다고 화내기도 하고 내가 한 것 잘했다고 말하지 않아서 화내기도 하고… 전 일을 하면 보상을 바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예쁜 아이를 울렸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혼냈습니다. 그 아이는 몸이 안좋은데 나까지 그러니 얼마나 슬펐을까요? 하지만 일 관계가 아니더라도 저는 그 아이를 좋아합니다. 동생처럼 잘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항상 조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이런 저런 것들을 해 준다면… 그것이 없으면 화를 내는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해 준다 하더라도 당연히 해 줄 것을 해줬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리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항상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눈물만큼 당신께서도 아파하셨겠지요. 주님! 제가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지 말게 하소서. 함께 어울리면서 함께 기뻐하면서, 함께 아파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게 하소서.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주님! 제 마음에 저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그저 해야할 것을 아직도 못하고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 저의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그 아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주님! 전 참으로 많이 불평하면서 살아갑니다. 내 맘 몰라준다고 화내기도 하고 내가 한 것 잘했다고 말하지 않아서 화내기도 하고… 전 일을 하면 보상을 바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예쁜 아이를 울렸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혼냈습니다. 그 아이는 몸이 안좋은데 나까지 그러니 얼마나 슬펐을까요? 하지만 일 관계가 아니더라도 저는 그 아이를 좋아합니다. 동생처럼 잘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항상 조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이런 저런 것들을 해 준다면… 그것이 없으면 화를 내는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해 준다 하더라도 당연히 해 줄 것을 해줬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리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항상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눈물만큼 당신께서도 아파하셨겠지요. 주님! 제가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지 말게 하소서. 함께 어울리면서 함께 기뻐하면서, 함께 아파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게 하소서.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주님! 제 마음에 저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그저 해야할 것을 아직도 못하고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 저의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그 아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예수님께서는 비유 말씀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겸손을 강조하신다. 제자는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말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이룩한 업적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님께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무걱도 아닌 착한 종”으로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비유 말씀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겸손을 강조하신다. 제자는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말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이룩한 업적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님께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무걱도 아닌 착한 종”으로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Re..말씀을 읽기 위한 자료
“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들은 대부분 여기에 나오는 그 농부처럼 처신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그들에게 깊이 와 닿았을 것이다.
그 종은 그 농부가 일 년 동안 고용한 농사꾼이었다. 따라서 그 농부는 그 일꾼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그 종은 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보살필 뿐 아니라 집안을 돌보아야 했다. 그는 요리를 하고 식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 농부 자신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농부는 종에게 엄청난 요구를 한다. 그는 별것 아닌것처럼 시키지만 종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종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농부는 집에 있었다.
종이 지쳐서 돌아왔지만 농부는 식탁에 기대어 그에게 시중을 들라고 시킨다.
이것을 상상해 보시라. 내가 종이되어서 별것도 아닌 농부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장면을.
보잘것 없는 사람이 보잘것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을…
종은 하루 일을 마친 후라서 배가 고팠겠지만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자기 종에게 한 마디 감사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권리만을 행사한다.
종은 종일 따름이며 농부가 명령한 대로 해야 한다.
…………………….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이 비유는 무자비한 농부와 불쌍한 종과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하여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 비유는 단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만을 묘사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시중은 종의 시중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계약의 한 형태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할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와 같은 생각을 모조리 배격하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의무도, 감사를 해야 할 빚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내세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보답을 바라면 안된다.
베드로 사도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마태19,27)라고 묻는 것처럼 보답을 바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우리가 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마치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에서 모든이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는 주인의 마음처럼…
그럼으로 우리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1고린9.16)
그럼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하물며 해 드린것이 별로 없는 나는 하느님께 요구할 것이 뭐가 있을까?
Re..말씀을 읽기 위한 자료
“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들은 대부분 여기에 나오는 그 농부처럼 처신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그들에게 깊이 와 닿았을 것이다.
그 종은 그 농부가 일 년 동안 고용한 농사꾼이었다. 따라서 그 농부는 그 일꾼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그 종은 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보살필 뿐 아니라 집안을 돌보아야 했다. 그는 요리를 하고 식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 농부 자신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농부는 종에게 엄청난 요구를 한다. 그는 별것 아닌것처럼 시키지만 종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종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농부는 집에 있었다.
종이 지쳐서 돌아왔지만 농부는 식탁에 기대어 그에게 시중을 들라고 시킨다.
이것을 상상해 보시라. 내가 종이되어서 별것도 아닌 농부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장면을.
보잘것 없는 사람이 보잘것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을…
종은 하루 일을 마친 후라서 배가 고팠겠지만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자기 종에게 한 마디 감사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권리만을 행사한다.
종은 종일 따름이며 농부가 명령한 대로 해야 한다.
…………………….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이 비유는 무자비한 농부와 불쌍한 종과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하여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 비유는 단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만을 묘사한다.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시중은 종의 시중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계약의 한 형태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할 빚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와 같은 생각을 모조리 배격하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의무도, 감사를 해야 할 빚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내세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보답을 바라면 안된다.
베드로 사도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마태19,27)라고 묻는 것처럼 보답을 바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우리가 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마치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에서 모든이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는 주인의 마음처럼…
그럼으로 우리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1고린9.16)
그럼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하물며 해 드린것이 별로 없는 나는 하느님께 요구할 것이 뭐가 있을까?
Re..독서
“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난 종 안할래요. 뭐 그래요. 일을 시켰으면 미안한 마음도 있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그래야지
이 농부는 경영마인드가 없는 사람 같습니다. 뭐 저렇게 살면 누가 일하러 오겠습니까?
나 이런 종 하기 싫어요. 오히려 좀 착한 농부 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물론 내가 해야할 일은 하지요.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을 시킨 사람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더 힘이나서 일을 하겠지요.
소리만 지르는데 누가 일하겠습니까?
난 안해요
할 수 있어도 안할꺼예요
물론 일을 시키면 당연히 해야지요. 하지만…
보상은 조금밖에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수고했다는 것.
좀 쉬면서 하라는 것.
뭐 이런정도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Re..독서
“여러분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 후에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난 종 안할래요. 뭐 그래요. 일을 시켰으면 미안한 마음도 있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그래야지
이 농부는 경영마인드가 없는 사람 같습니다. 뭐 저렇게 살면 누가 일하러 오겠습니까?
나 이런 종 하기 싫어요. 오히려 좀 착한 농부 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시오.”
물론 내가 해야할 일은 하지요.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을 시킨 사람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더 힘이나서 일을 하겠지요.
소리만 지르는데 누가 일하겠습니까?
난 안해요
할 수 있어도 안할꺼예요
물론 일을 시키면 당연히 해야지요. 하지만…
보상은 조금밖에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수고했다는 것.
좀 쉬면서 하라는 것.
뭐 이런정도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Re..묵상
주님! 전 참으로 많이 불평하면서 살아갑니다.
내 맘 몰라준다고 화내기도 하고
내가 한 것 잘했다고 말하지 않아서 화내기도 하고…
전 일을 하면 보상을 바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예쁜 아이를 울렸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혼냈습니다.
그 아이는 몸이 안좋은데 나까지 그러니 얼마나 슬펐을까요?
하지만 일 관계가 아니더라도 저는 그 아이를 좋아합니다.
동생처럼 잘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항상 조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이런 저런 것들을 해 준다면…
그것이 없으면 화를 내는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해 준다 하더라도
당연히 해 줄 것을 해줬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리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항상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눈물만큼 당신께서도 아파하셨겠지요.
주님! 제가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지 말게 하소서.
함께 어울리면서 함께 기뻐하면서, 함께 아파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게 하소서.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주님! 제 마음에 저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그저 해야할 것을 아직도 못하고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 저의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그 아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Re..묵상
주님! 전 참으로 많이 불평하면서 살아갑니다.
내 맘 몰라준다고 화내기도 하고
내가 한 것 잘했다고 말하지 않아서 화내기도 하고…
전 일을 하면 보상을 바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예쁜 아이를 울렸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혼냈습니다.
그 아이는 몸이 안좋은데 나까지 그러니 얼마나 슬펐을까요?
하지만 일 관계가 아니더라도 저는 그 아이를 좋아합니다.
동생처럼 잘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항상 조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이런 저런 것들을 해 준다면…
그것이 없으면 화를 내는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해 준다 하더라도
당연히 해 줄 것을 해줬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리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항상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눈물만큼 당신께서도 아파하셨겠지요.
주님! 제가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지 말게 하소서.
함께 어울리면서 함께 기뻐하면서, 함께 아파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게 하소서.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주님! 제 마음에 저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그저 해야할 것을 아직도 못하고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 저의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그 아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저희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 (루가 17, 7-10)
예수님께서는 비유 말씀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겸손을 강조하신다. 제자는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말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이룩한 업적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님께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무걱도 아닌 착한 종”으로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사랑이신 예수님!!!!
점점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데 ….
머리로는 얼마든지 알아듣는것 같은데…왜??
당신께서 강조하시고 계시는 말씀을 실천하기에는 정말 어렵습니다
저도 남에게는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교만한 마음도 있지만…그래도…
애시당초 저희 를 만드실때 겸손한 마음만 만드셨어도 어렵지 않은것임을…
봉사한답시고 열심히 했는데 ….알아주지 않으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것을 …
어떻게 해야 하는지……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당연한 말씀이신데…수양이 부족한 탓일까요?
그래도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니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저의 이모든생각들이…당신을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마음으로 …
진정한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것을 당신께서 알고 계시는데….참 치사한 생각을 하는저의 모습을
보고 계실 당신을 …..
이제부터라도 …당신을 째째하신분으로 말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겸손해지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저희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 (루가 17, 7-10)
예수님께서는 비유 말씀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겸손을 강조하신다. 제자는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말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이룩한 업적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님께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무걱도 아닌 착한 종”으로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사랑이신 예수님!!!!
점점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데 ….
머리로는 얼마든지 알아듣는것 같은데…왜??
당신께서 강조하시고 계시는 말씀을 실천하기에는 정말 어렵습니다
저도 남에게는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교만한 마음도 있지만…그래도…
애시당초 저희 를 만드실때 겸손한 마음만 만드셨어도 어렵지 않은것임을…
봉사한답시고 열심히 했는데 ….알아주지 않으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것을 …
어떻게 해야 하는지……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당연한 말씀이신데…수양이 부족한 탓일까요?
그래도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니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저의 이모든생각들이…당신을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마음으로 …
진정한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것을 당신께서 알고 계시는데….참 치사한 생각을 하는저의 모습을
보고 계실 당신을 …..
이제부터라도 …당신을 째째하신분으로 말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겸손해지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