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금화 하나를 받았으니…

 

나도 금화 하나를 받았으니…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과월절 축제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기념하러 떼를 지어 거룩한 도시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다윗 왕국의 수복에 대한 커다란 희망이 솟아 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가 언제냐인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느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서 그들 마음에 준비하는 자세를 심어 주려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당신의 재림이 곧 시작된다는 사람들의 잘못된 열광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종말론적인 희망을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한 귀족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 이 비유가 발설된 장소 예리고는 아르켈라오의 영토였습니다. 헤로데의 유언에 의하면 그의 세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와 필립보와 아르켈라오는 아버지의 영토를 나누어 가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르켈라오는 유대를 차지하고 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의 승인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갔지만 그의 신하들은 그가 잔인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했습니다. 오십 명의 유대인 대표단이 헤로데의 소망을 좌절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우구스토는 아르켈라오가 스스로를 입증할 때까지 겨우 영주라는 칭호를 주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그 당대의 사건들에서 착상을 얻은 것 같이 보입니다.



이제 귀족 출신의 그 왕위 청주구는(아르켈라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신 예수님의 상징하게 됩니다.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금화 한 개씩을 나누어 주면서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이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


그 왕위 청구자는 자기가 없는 동안을 위해 “종”들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맡겨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종들이 받은 금화 한 개는 대단한 액수는 아닙니다. 일꾼이 3개월 동안에 벌 수 있는 금액입니다(하루 3만원*90일=2백7십만원 정도..). 그 종들은 작은 것으로 그들의 충실성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재산(믿음, 사랑, 선교활동,…)을 관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왕위 청구자의 신하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원수들도 그리스도가 안 계시는 동안에 끊임없이 활동합니다. 그들은 그분의 통치권이 인정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이 우리에게는 유혹이요, 박해요,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 오자마자 돈을 맡겼던 종들을 불러서 그 동안에 돈을 얼마씩이나 벌었는지를 따져 보았다.”


이 비유에서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들과 셈을 치르기 위해 종들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마치 최후의 심판을 보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오시면 그분은 우리에게 관리한 내역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종은 금화 하나를 열개로 늘렸습니다. 둘째 종은 다섯 개로 늘렸습니다. 이 두 종은 그들의 돈을 성공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이들은 작은 일에 충성을 다 하였기에 그들이 번 이익에 상응하는 수의 도시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주님의 날에 이렇게 충성스러운 종처럼 그렇게 영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종이 등장합니다.


“주인님, 주인님이 주신 금화가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 두었습니다.”


이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돈으로 어떠한 모험도 하기를 마다했습니다. 왜그랬을까요? 아마 이 종도 주인이 왕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주인을 지독한 폭군, 탐욕스러운 장사꾼, 자기 중심주의자라고 비난하였을 것입니다.


“주인님은 지독한 분이라 맡기지도 않은 것을 찾아 가고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시기에 저는 무서워서 이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전하게 처신하기로 작정하였고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겨냥한 이 비유의 원래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무자비한 청구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문자 그래도 지키는 데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둘레에 침범할 수 없는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지켰지만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종이 수건으로 자신의 금화를 쌓아 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몹쓸 종아, 나는 바로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벌주겠다.”


왕위 청구자는 자기 돈을 돌려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종에게 장사를 해보라고 하였지만 종은 주인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길 원하십니다. 대담하고 활기차기를, 분별 있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오실 주님, 셈을 요구하실 주님께 대한 기다림은 인간을 무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 종은 주인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주님을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잘 들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제 왕은 심판을 내렸습니다. 그 사악한 종이 가지고 있던 금화를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 결정은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어떻게 있는 사람에게 더 주신단 말인가? 저 사람은 열개나 있는데…하지만 왕은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안전함은 모든 것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을 남기는 데 있습니다(이 말씀 듣고 무모하게 증권에 투자한다 던가 땅이나 아파트를 사라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제자의 삶은, 가진 것을 활용함 없이 평화롭게 소유한다는 것이, 안주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 자기 형제, 자기 본당만 생각한다면 이 다음에 이 불충실한 종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잘못 이해하면 내 가정, 내 형제, 내 본당만을 생각할 수 밖에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행한 사람이 받게 될 것이 무엇인지 오늘 이 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  그리고 내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내 원수들은 여기 끌어 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


아르켈라오는 바라던 그 왕위를 얻지 못한 채 돌아왔을 때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끔찍스러운 복수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재림하실 때 심판관으로 행동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끔찍하게 우리를 다루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게으른 종처럼 그렇게 행동할 때 우리는 결코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ㅏ.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상을 받은 종들과 벌을 받은 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 내가 체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혹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종처럼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3. 수건으로 금화를 쌓아둔 종의 모습은 마치 나만을 생각하는,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그런 신앙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내가 타 본당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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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금화 하나를 받았으니…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상을 받은 종들과 벌을 받은 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안나는 맨둥맨둥 살면서 준비를 하는 삶을 아니 삽니다. 그저 오늘을 삽니다. 아니, 현재를 삽니다. 안목이 짧아 받은 능력을 잘 보존하지도 못하고 사용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느낌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허둥대며 “아이, 어떻게? 기름 좀 빌려주세요!”

    사정하겠지요? 그래도 안나는 “주님! 사랑해요” 말은 잘 합니다.


    2.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 내가 체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혹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종처럼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안나의 예수님은,

    안나가 아는 우리 주님은 바보랍니다.

    꾸중은 커녕 응석만 받아주셔서 안나는 망아지 마냥 날뛰는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돌아오라 문밖에서 기다리시며 행여나 안나가 힘들까봐 안쓰럽게 마음 졸이시는 사랑의 정배이십니다.

    무례하고 무모한 안나는 주님께 응석받이로 떼를 쓰는 사람입니다.

    안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대하는 이가 주님입니다.

    누구에게도 대어들지 못하는 안나이지만 주님께는 지지않는 안나입니다. 

    예수님이 안나 사랑하는 것을 알거든요.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참는다지요?

     


    3. 수건으로 금화를 쌓아둔 종의 모습은 마치 나만을 생각하는,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그런 신앙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내가 타 본당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안나는 옹졸해요.

    겨우,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할 때 세상의 모든 생명을 위해 기구합니다.

    그리고, 매일 기도 때 모든 생명이 내가 알거나 모르거나 그분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받으시기를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평화로이 지내시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모든 은인들과, 고통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모든 이들, 환자와, 대자 대녀들, 우리 아이들, 엄마 아빠, 가족, 형제들, 특별히 지향하는 이들, 안나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를 기도로써 하느님의 가슴에 안겨 드립니다.

     

     



  2. user#0 님의 말: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상을 받은 종들과 벌을 받은 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안나는 맨둥맨둥 살면서 준비를 하는 삶을 아니 삽니다. 그저 오늘을 삽니다. 아니, 현재를 삽니다. 안목이 짧아 받은 능력을 잘 보존하지도 못하고 사용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느낌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허둥대며 “아이, 어떻게? 기름 좀 빌려주세요!”

    사정하겠지요? 그래도 안나는 “주님! 사랑해요” 말은 잘 합니다.


    2.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 내가 체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혹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종처럼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안나의 예수님은,

    안나가 아는 우리 주님은 바보랍니다.

    꾸중은 커녕 응석만 받아주셔서 안나는 망아지 마냥 날뛰는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돌아오라 문밖에서 기다리시며 행여나 안나가 힘들까봐 안쓰럽게 마음 졸이시는 사랑의 정배이십니다.

    무례하고 무모한 안나는 주님께 응석받이로 떼를 쓰는 사람입니다.

    안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대하는 이가 주님입니다.

    누구에게도 대어들지 못하는 안나이지만 주님께는 지지않는 안나입니다. 

    예수님이 안나 사랑하는 것을 알거든요.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참는다지요?

     


    3. 수건으로 금화를 쌓아둔 종의 모습은 마치 나만을 생각하는,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그런 신앙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내가 타 본당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안나는 옹졸해요.

    겨우,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할 때 세상의 모든 생명을 위해 기구합니다.

    그리고, 매일 기도 때 모든 생명이 내가 알거나 모르거나 그분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받으시기를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평화로이 지내시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모든 은인들과, 고통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모든 이들, 환자와, 대자 대녀들, 우리 아이들, 엄마 아빠, 가족, 형제들, 특별히 지향하는 이들, 안나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를 기도로써 하느님의 가슴에 안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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